한국 국민들에게 IMF(국제통화기금)라는 기관은 아직도 좋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바로 20년 전인 1997년,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면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 20년이 지난 2017년 한국경제에 외환위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주장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과 그때의 펀더멘털은 다르다. 외환보유액만 보아도 1997년 204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16년에는 3711억 달러에 달한다. 외환보유고/단기부채 비율도 1997년 35%에서 2015년에 353%에 이를 정도로 건전해졌다. 경상수지도 그때와는 달리 대규모 흑자를 지속 중이다.
당시 외환위기의 시작은 정확히 1997년 1월 이맘때쯤 재계 14위의 한보그룹이 한보철강의 부도로 도산하면서부터다. 이후 삼미, 진로, 기아, 쌍방울, 해태, 한라그룹 등이 쓰러졌고 종금, 은행, 증권 등의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우리 기업들이 그 지경에 이른 원인은 다양하다.
환율 고평가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 과소비로 인한 수입 증가, 정부의 정책 실기, 해외투기자본의 농간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에도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의 흐름을 잘못 읽었다는 책임이 있다. 또한 감당할 능력을 넘어서는 무분별한 차입 그리고 전무한 리스크 관리 능력이 그것이다. 여하튼 지금 우리 기업들은 쓰라린 경험과 잘못된 투자는 기업 생존을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기억한다. 그러기에 그때와 같은 대규모의 기업 생태계 붕괴 가능성은 희박하고 우리가 다시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맞는다.
그러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선 변화를 싫어하여 지금 가고 있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진리라 믿는 것이다. 그래서 20년 전 한국경제의 주력산업들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주력산업들이다.
그런데 우물 밖 세상은 변했다. 지금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우리의 주력산업들이 아니다. 그나마 지금 주력산업조차도 그 시장을 중국에 다 내어주는 것이 시간문제일 뿐이다. 또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겁이 많다. 그때도 그랬지만 경제대국에 대한 시장의존도가 너무 높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도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속수무책으로 넙죽 엎드리고 있다. 필자도 그러한 강대국들의 횡포가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이 걱정된다.
그러면서도 한편 이런 생각도 해본다. 오래전부터 하도 강대국들의 등쌀에 시달려 온 경험에서 나오는 막연한 두려움은 아닐까?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외환위기 이후 다양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나아진 점을 모르겠다. 아마도 성장이 멈춰 파이는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데,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먹어 봐야 달라질 여지가 있겠는가 싶다.
마지막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기업도 국민도 뚜렷한 목표와 비전이 없다. 한때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던 경제성장의 신화와 에너지 넘치는 역동성을 우리는 이미 1997년에 잃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변화를 싫어하고,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팍팍한 삶에 지쳐 있는 거기까지는 그래도 좋다. 그러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시 외환위기라는 악몽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경제시평-주원] 20년 전 외환위기 그 후
입력 2017-01-24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