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발레리나로 무대에 설 일은 앞으로 결코 없을 겁니다. 단장으로서 국립발레단의 발전에 하나의 디딤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강수진(50)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지난 13일 연임이 결정됐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겸 종신단원 자격을 내려놓고 고국으로 돌아온 이후 지난 3년간의 성과를 인정받은 셈이다.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강 단장을 만났다. 그는 “3년 전 국립발레단에 올 때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렇게 살아남은 걸 보니 내가 추진해온 방향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웃었다.
공연계에는 이변이 없는 한 그가 연임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지만 확정된 것이 아니어서 국립발레단은 지난 16일에야 비로소 올해 프로그램을 발표할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작 ‘허난설헌-수월경화’와 ‘안나 카레니나’다.
‘허난설헌-수월경화’는 국립발레단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에서 주목을 받은 솔리스트 강효형이 안무를 맡았다. 그동안 ‘요동치다’ 등 2개의 소품을 안무한 게 전부인 강효형이 2막짜리 드라마 발레를 만들기엔 위험부담이 커 보인다. 안무가로서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간을 두고 작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없을 경우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강 단장은 “이번 프로젝트의 리스크가 큰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강효형 혼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도록 다른 전문가들도 돕고 있다”면서 “국립발레단이 성장하려면 젊은 안무가를 키워낼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 물론 성공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간이 아닌 국립발레단이기 때문에 이런 기획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돌이켜보면 내게 있어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그만두고 국립발레단에 온 것도 리스크가 엄청났던 도전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덕분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나”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신작 ‘안나 카레니나’는 스위스 취리히 발레단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푹이 2014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으로 오는 11월 서울과 강원도 강릉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슈푹이 라흐마니노프 음악으로 만든 ‘안나 카레니나’는 드라마 발레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관객들이 ‘백조의 호수’를 좋아한다고 맨날 그것만 공연하는 게 아니라 취향을 넓혀갈 수 있도록 다양하게 프로그래밍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런 신작은 단원들이 발레의 다양한 스타일을 익히는데도 도움이 된다. 단장으로서 첫 임기 동안 무대에 올린 작품 가운데 ‘봄의 제전’(안무 글렌 테틀리)만 보더라도 처음엔 단원들이 익숙지 않아 힘들어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좋아졌다”고 답했다.
지난해 7월 22일 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오네긴’ 공연과 함께 은퇴했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선 그가 지난해 내한했던 발레리나 알레산드라 페리처럼 은퇴했다가 복귀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아직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하지만 평생 후회 없이 춤췄기 때문에 내가 다시 춤출 가능성은 아예 없다”면서 “솔직히 은퇴 전에 무용수로서 국립발레단 단원들과 같은 무대에 한번은 서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춤을 춤으로써 누군가의 기회를 뺏는 것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고 답했다. 이어 “지금은 우리 단원들이 제발 다치지 않고 올 시즌을 마치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국립발레단 발전에만 전념… 무대에 서는 일은 없을 것”
입력 2017-01-25 00:05 수정 2017-01-25 0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