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가출은 아니고 외출

입력 2017-01-24 17:33

최근에 갔던 어느 음식점에서는 손님의 외투를 따로 보관해주고 있었다. 나는 외투를 맡기기 전에 겉주머니를 뒤져 신용카드 한 장을 꺼냈는데, 꺼내고 보니 그건 음식물쓰레기 카드였다. 음식물쓰레기 배출기기에 인식시켜 무게를 재는 용도 말이다. 소설가 넷이 모인 자리였다. 생뚱맞은 카드의 출현으로 저마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시스템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동네마다 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어떤 동네는 카드가 없고, 어떤 동네는 음식물쓰레기 배출카드가 교통카드 겸용이고, 어떤 동네는 오로지 쓰레기 무게 측정 용도로만 쓸 수 있었고, 내 것이 그 경우였다. 그러니까 더 황당할 뿐. 교통카드 겸용도 아닌데, 외출하는 길에 음식물을 버린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떤 경로로 이 카드가 여기에 합류한 거란 말인가.

단발성 해프닝으로만 생각하기엔, 이런 일이 꽤 있었다. 밥값을 계산하려고 신용카드를 내밀었다가 직원의 당혹스러운 표정과 마주한 적도 있다. 계산대의 직원이 꽤 오래 뭉그적거리더니 “저기 이 카드가…”라고 말했다. 내가 내민 게 음식물쓰레기 카드였던 것이다. 물론 실수였다. 어떤 의도를 가진 행동은 아니었다. 그 집 음식은 맛있었으니 확대 해석은 금물이다.

어쩌면 내가 가진 음식물쓰레기 카드가 한두 개가 아니라서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다. 처음에 카드는 두 장이었는데 그걸 잃어버리는 바람에 한 쌍씩 두 번이나 더 발급받았다. 괘씸한 건 새것이 생기면 그때서야 불쑥 이전 것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내게는 모두 여섯 장의 카드가 있다. 여섯 장을 일렬로 늘어놓을 자신은 없다. 이걸 찾으면 다른 게 없고, 다른 걸 찾으면 또 이게 없는 식이니.

다만 나는 상상해볼 뿐이다. 외출복 주머니 속으로 히치하이킹 하는 카드를. 종이 뭉치 속에 숨어드는 카드를. 일부러 비슷한 색상의 신용카드 앞에 자리잡는 카드를. 그래야 예기치 않은 순간에 출몰할 수 있을 테고, 모두의 시선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아니면 조명이라도. 이쯤 되면 거의 생물 아닐까?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