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유라의 ‘금수저 대출’ 뭐가 문제인가

입력 2017-01-24 05:03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이용한 하나은행의 보증신용장(Standby L/C) 대출이 불법 외환거래에 가깝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정씨는 앞서 독일에서 4억원이 넘는 거액을 빌리면서 외환 거래 신고를 거치지 않았다. 한국 거주자인 정씨가 비거주자 자격으로 돈을 빌리는 등 대출 과정에 위법성이 짙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특검팀은 정씨가 신용장 대출을 통해 일반인이 대출을 받았을 때보다 이자 비용을 연 3.2%(1600만원 상당) 아낀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관련 조사 자료를 넘겨받아 정씨가 이런 대출을 한 배경을 추적 중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정씨가 귀국하는 대로 당연히 관련 의혹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특검팀과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보증신용장 대출은 기업이 주로 이용한다. 개인 보증신용장 발급은 국내에선 신한·우리·하나은행만 취급한다. 2014년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총 80건이 발급됐다. 하나은행은 2014년 12건, 2015년 10건, 지난해 9월 말까지 2건을 발급했다. 자영업자의 사업자금 등 불가피한 경우에 개인 보증신용장 대출이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정씨는 2015년 12월 8일 하나은행 압구정중앙점에서 최씨 명의 예금 3억원 및 강원도 평창군 땅을 담보로 각각 1억8000만원, 2억9800만원의 신용장을 발급받는다. 지난해 1월 이 신용장으로 독일 하나은행 현지법인에서 연 0.98%로 38만5000유로(약 4억7500만원)를 빌렸다. 일반적으로 예금 담보 대출이 3∼4%, 땅 담보 대출이 5∼6% 금리인 것에 비하면 적은 비용이다. 한국에서 대출받고 독일로 돈을 보냈다면 내야 했을 환전·송금수수료도 아낄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거래 액수를 지속적으로 늘렸을 경우 절약되는 금액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하나은행 측은 “정씨는 우량 고객이라 국내 예금담보 대출에 1.9%, 땅 담보 대출에 2.9% 금리가 적용된다. 실제 정씨가 아낀 비용은 354만원 정도”라고 해명했다.

신용장을 이용한 개인 대출이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특검팀은 정씨가 외국환 거래 신고의무를 고의로 어긴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정씨는 신용장을 받을 때 한국 비거주자로 보증계약을 신고했다. 최씨 등이 실소유한 독일 코레스포츠에 재직하고 있다는 증명서도 은행에 냈다. 비거주자로 인정되려면 2년 이상 해외에 살면서 영업활동을 한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 정씨는 2015학년도에 이대에 입학했고, 독일에서 2년 이상 업무를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재직증명서 자체가 유효하지 않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하나은행은 정씨의 비거주자 요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다만 하나은행 관계자는 “통상 신용장은 서류 작업을 통해 발급된다. 은행 차원에서 서류의 회사가 실체가 있는지, 회사에 실제 사람이 재직 중인지 파악하긴 어렵다”고 해명했다.

특검팀은 부자연스러운 일련의 자금흐름에 이자 절약 외에 다른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정씨 등이 한국 재산을 세탁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신용장을 발부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에 송금할 경우 한국은행 외환전산망에 송금기록이 남는다. 하지만 한국 신용장으로 해외 대출을 받으면 신용장 발부 기록은 남지만, 자금 이동 흔적은 남지 않는다.

특검팀은 정씨의 독일 현지 대출 당시 하나은행 독일법인장을 지낸 이상화 글로벌영업 2본부장을 최근 소환해 조사했다. 특검팀은 정씨에 대한 대출에 윗선이 관여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 본부장은 지난해 1월 귀국해 한 달 뒤 승진했다. 하나은행은 정기인사 시즌이 아닌데도 글로벌영업본부를 1본부와 2본부로 나눠 이 본부장을 승진시켰다. 하나은행 측은 뛰어난 업무 추진력 등을 감안한 승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