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3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을 적극 반박했다. 당시 알리바이뿐 아니라 반 전 총장의 일기장까지 공개했다. 뇌물 사건의 아킬레스건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부각하는 전략이다.
문제의 20만 달러가 오갔다는 만찬은 2005년 5월 3일 서울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에서 열렸다. 일단 박 전 회장이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 자격으로 만찬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다. 의혹의 주요 내용은 만찬이 열리기 1시간 전쯤 박 전 회장이 공관에 먼저 도착해 20만 달러를 담은 쇼핑백을 반 전 총장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반 전 총장 측 박민식 전 의원은 당시 오후 5시부터 6시를 넘은 시점까지 반 전 총장이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비공개회의를 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오후 7시 예정됐던 만찬 1시간 전쯤 돈을 주고받았다는 의혹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박 전 의원은 “추측컨대 일러도 6시40분이나 50분쯤 (반 전 총장이) 도착했다”고 말했다. 당시 뇌물수수가 이뤄졌다는 공관 사무실에 대해선 “공관에는 집무실, 사무실 등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만찬이 시작된 시점(오후 7시40분쯤)을 기준으로 하면 ‘반 전 총장이 만찬 1시간 전 만찬장에 도착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지 않다. 박 전 의원은 “그 시간에 사람들이 스탠딩 파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돈을 주느냐”고 반박했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실제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박 전 회장의 뇌물공여 장소는 서울역 옥외주차장 등 ‘의외의 장소’도 있었다.
뇌물죄의 구성 요건인 대가성도 쟁점이다. 반 전 총장 측은 박 전 회장의 청탁 내용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박연차 게이트’ 사건의 공소장엔 박 전 회장이 2006년 9월쯤 추진했던 베트남 화력발전 사업에 대해 외교부 등 범정부적 지원을 받으려고 청와대 인사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가 적시돼 있다. 다만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전 회장이 반 전 총장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했느냐는 질문에 “보고받은 바가 없다”며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은 공관 만찬 다음 날 작성됐다는 반 전 총장의 일기장도 공개했다. 반 전 총장은 일기장에 “(박 전 회장이) 폭탄주를 돌리라고 강권하고 또 혼자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등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버렸다”며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과 가깝다고 돌아다니니 대통령에게 큰 누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박 전 의원은 “일기장엔 박 전 회장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며 “친분관계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주관적 일기장’을 증거로 보긴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박 전 의원은 반 전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취임 초반 박 전 회장으로부터 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장소도 주어도 목적어도 없다”고 일축했다. 박 전 회장도 의혹을 보도한 매체에 돈을 건넨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팩트 검증] 반기문 측 ‘23만 달러 의혹’ 해명과 풀리지 않는 의혹
입력 2017-01-24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