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개성공단은 ‘퍼주기’ 아닌 ‘퍼오기’… 수조원 이득”

입력 2017-01-25 05:03
정기섭 회장은 “지난 1년간 무척 힘들었다”면서 “정부의 실질적인 보상과 함께 궁극적으로는 개성공단이 재가동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다음 달 10일이면 개성공단이 전격 폐쇄된 지 1년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저지하기 위한 압박 카드로 지난해 2월 10일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2004년 12월 공단에서 첫 제품이 생산된 지 12년 만의 조처다.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에 따라 공단 입주기업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결정이 급박하게 단행되는 바람에 기업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거의 빈손으로 나왔다. 1년 동안 그들은 정부와 정치권, 언론 등에 사정을 호소하는 등 자구책을 모색해 왔다. 정기섭(65)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을 만나 입주기업들의 애로와 요구사항 등을 들어봤다. 그는 임가공을 통해 연간 15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던 의류제조업체인 ㈜에스엔지 대표이사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7층 사무실에서 만난 정 회장은 “개성공단은 퍼주기가 아니라 대표적인 퍼오기 사업”이라며 조속한 재개와 함께 제대로 된 정부 보상을 요구했다.

-공단이 문을 닫은 지 1년이 다 됐다. 기업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우리에게 지난 1년은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공단 재개 가능성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제대로 피해 보상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시간만 가고 있는 셈이다.”

-1년 전 공단 폐쇄 당시 상황은 어땠나.

“그때가 설 연휴였다. 통일부 장관이 만나자고 해 공단기업협회 임원들과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 갔다. 그 자리에서 공단 폐쇄 결정 소식을 처음 들었다. ‘내일부터 철수하라’고 하더라. 2시간쯤 지나니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더라. 정말 당혹스러웠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멍한 느낌이었다. 그 같은 징후를 전혀 예상하지 못해 충격은 더 컸다. 3일 전에 열린 NSC와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보고 때도 공단 관련 논의는 없었기 때문에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설 쇠러 서울에 온 그때 이후 개성에 있는 공장에 못 가봤다.”

-공단 기업들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정부는 ‘지원’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잘못에 따른 ‘보상’이 아니란 얘기다. 이러다보니 피해 규모에 대해 정부와 기업 간 인식차가 매우 크다. 우리는 투자 및 유동자산은 물론 영업손실과 영업권 상실에 대해서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인이 타의에 의해 경영을 못하게 됐는데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정부는 장부상 잔존자산만 인정한다. 그나마 확인된 피해금액 7860억원 중 지원된 것은 62%인 4838억원이다. 중요한 것은 지원의 개념이 그냥 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중 70% 정도는 우리가 낸 보험금이고, 나머지 30%는 무이자 융자다. 더욱이 이 보험금은 공단이 재가동될 경우에는 다시 되돌려줘야 된다. 우리는 실질 피해액이 1조5000억원을 웃돈다고 보는데 그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을, 그것도 보상이 아니라 지원이라고 하면서 빌려준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입장 차이가 있는 이유는.

“정부는 공단 폐쇄가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내린 행정행위로 간주한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보면 헌법과 남북교류협력법에 위배된 결정일 뿐이다. 정부가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했을 때는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하고 공단에서의 영업행위를 제한·취소할 때 지켜야 할 절차를 정부가 어겼다는 얘기다. 이는 관련 법률에 규정된 내용이다. 우리가 임의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작년 5월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 행위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 아마 대통령 탄핵사건 때문에 손을 제대로 못 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입주기업들 실태는.

“123개 기업 가운데 60% 정도는 사실상 손놓고 있거나 극히 일부가 국내 사업장 중심으로 가동하고 있다. 해외에 공장이 있는 대기업 등 20%쯤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전체적으로 실직 등 피해가 엄청나다. 협력업체 직원 가족 등을 포함하면 수만명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출구 옆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하는 분들이 있다. 67개 영업기업 관계자들이다. 영업기업이란 공단에서 식당을 하거나 유지보수, 부자재 등을 공급하는 등 공장을 지원하는 업체들인데 영업활동을 입증할 만한 장부와 자료가 개성의 현지 사업장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1원도 보상받지 못한 곳도 있다. 정말 딱하다.”

-개성에 두고 온 장비나 원·부자재 상태는 어떤가. 많이 훼손되지 않았겠나.

“워낙 황망하게 떠나와 제대로 수습을 하고 철수한 기업이 거의 없다. 걱정이 많다. 천 같은 원·부자재는 시간이 지나면 삭고 기계도 녹슬 수 있어 걱정이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개성시 인민위원회가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그들도 빨리 재개되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싶다. 2013년에 공단이 몇 달 폐쇄됐을 때도 다시 돌아가 보니 비교적 보존이 잘됐더라. 문제는 얼마나 이 상태가 더 지속돼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협회 차원에서 1년간 어떤 활동을 했나.

“나는 지금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직책도 맡고 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도 했고, 보상을 요구하는 옥외집회도 수차례 가졌다. 방북 신청을 세 번했으나 불허되기도 했다. 물론 언론을 통해 우리 형편을 호소한 적도 많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최씨가 개성공단 같은 주요 국정 현안에 개입했다는 뜻의 발언을 하지 않았나. 그래서 비대위가 최씨를 검찰에 고발했고 작년 12월 15일에는 특검에 찾아가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다른 더 중요한 일이 많기 때문인지 특검이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하는 움직임은 없는 것 같다. 이씨를 직접 만나 자세한 내용을 듣고자 했으나 만나지는 못했다.”

-개성공단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비용 퍼주기라는 지적이 적지 않은데. 정부는 임금의 70%가량이 이런 데 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쎄, 동의하지 않는다. 북측 근로자의 임금 용처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급하는 임금의 30%는 개성시에 귀속이 된다. 개성공단관리총국이 나머지 70% 가운데 일부는 북한 인민폐로, 그 외는 쌀, 고기, 식용류 등 주로 외국에서 수입한 물품 구입용 쿠폰을 근로자에게 준다. 임금을 보면 공단이 처음 운영된 2005년 당시에는 근로자 1인당 월 57.5달러였고 문 닫기 직전에는 180∼200달러였다. 북한의 물가나 경제 사정 등을 감안할 때 이 금액의 상당 부분은 근로자 생활비로 충당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공단 가동 초기에 미국 정부가 이에 대해 상당히 의혹을 가지고 감시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는 엉뚱한 곳에 전용되지 않았겠나.

“다시 설명해보자. 공단이 가동된 만 11년 동안 북측 근로자 임금으로 지급된 돈이 모두 6200억원 정도다. 1년에 560억원 정도 되는데 상식적으로 이 가운데 생활비로 쓰인 것이 제법 되지 않겠나. 얼마가 무기 개발에 들어갔느냐는 사실을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를 계속 따지는 것보다 개성공단을 경제 관점에서 보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핵과 미사일 문제는 원래부터 다자간 협정에서 다루기로 한 것 아닌가. 경제협력은 그 자체로 이해하면 된다. 나는 솔직히 말해 ‘퍼주기’가 아니라 ‘퍼오기’라고 생각한다. 부가가치를 따지면 우리는 수조원의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남측 고용인력도 2000명에 달했다. 전후방 효과가 엄청났다. 국내 중소기업의 활로 모색 차원에서도 순기능이 엄청났다. 우리가 몇 배 더 이익을 봤다. 그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점도 의미 있다. 초기에 ‘납기’나 ‘불량’이라는 용어 자체를 이해 못했던 그들이 점차 숙련도가 높아져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2013년에서 2015년 사이 최대 이익을 얻었다. 처음엔 적대적으로 대하던 그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일에 먼저 협조적으로 나오는 등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이해해갔다.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은 늘 ‘북한 근로자들 얼굴색을 보면 그 친구가 얼마동안 공단에서 일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그만큼 그들을 변화시켰다는 의미다.”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공단의 조속한 재개와 실질적인 피해 보상이다.”

-곧 재개될 것으로 보나. 실질적 보상을 위해 법 제정 움직임이 있는데.

“언제 재가동될지 알 수 있겠나. 여권 대통령 선거 후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야권 후보들은 공단 재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피해보상특별법과 관련 3건의 법안이 발의돼 있는데 잘 통과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6일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빨리 좀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확답을 못하더라. ‘노력을 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개성공단 현황·일지

6·15선언 후 시작 2007년 본격 운영… 北 5만5000명에 누계 임금 6160억원


개성공단은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추진된 남북경제협력사업의 하나로 시작됐다. 그해 8월 현대아산㈜과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과의 개발합의서가 체결되면서 구체화됐다. 4년4개월 만인 2004년 12월 시범단지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이 처음으로 반출됐으며 2007년 1단계 분양 및 1단계 1차 기반시설이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으로 운영됐다.

공단은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북한 측이 한·미 양국의 합동군사훈련 등을 트집 잡아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근로자를 철수시키는 바람에 일시 가동이 중단됐다. 지난해 문을 닫을 당시 국내 기업 123곳에 5만5000여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을 했다. 가동 초기부터 폐쇄될 때까지 북한 근로자 임금으로 유입된 금액은 6160억원이었고 연간 누계 생산액은 32억3000만 달러였다.

공단은 단순교역이나 위탁가공 등 초보적 수준에 머물렀던 남북 간의 경제협력 수준을 직접투자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의미가 있다. 이로써 물자와 자본뿐 아니라 인적 교류가 급증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군사대립 완충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개성공단 재개 여부는 불투명하다. 공단이 북핵 해결의 지렛대가 될 수 있고 남북 간 신뢰회복의 척도라는 점에서 재개의 당위성이 힘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단 폐쇄 이후 북한은 추가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두 건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결의안에 따르면 공단 내 은행 지점 개설 불가, 북한 반출입 화물 전수 조사 등 현실적 제재조항이 많아 재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내 보수세력을 설득하는 문제와 함께 북한 정권과의 협의 등 난관이 숱하다. 한마디로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글=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