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제8차 공개변론에서는 최순실(61·수감 중)씨의 비선실세로서 놀라운 영향력 행사가 계속 증인들의 입에서 나왔다. 최씨는 특별한 용건이 없이도 정부부처 차관을 심야에 서울 강남의 길가로 불러내기도 했다. 국무회의 자료를 스스로 수정하는가 하면 박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했다. 중책을 맡은 공직자들이 최씨에게 쩔쩔맸다는 장면이 증언될 때 헌재 재판관들의 표정은 싸늘했다.
김종(56·수감 중)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2014년 2월쯤 지인인 하정희 순천향대 교수로부터 “체육계가 돌아가는 것을 잘 아는 여성이 있다. 그 여성에게서 연락이 갈 것”이라는 연락을 받은 뒤 최씨를 1개월에 1회쯤 만나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어떤 사람이 ‘체육계를 잘 아는 여성이 있으니 만나보라’고 한다고 차관이 냅다 가서 만나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물었다. 김 전 차관은 이에 “그때 정윤회씨의 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진성 재판관은 “결국 대통령과 관련돼 있다고 생각해 만난 거냐”고 물었다. 이에 김 전 차관은 “그런 생각도 있었다”고 답했다. 앞서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 전 차관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길가에서 최씨를 만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수사기록을 확인한 이 재판관이 어떤 용건이었느냐고 묻자 김 전 차관은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바쁜 차관이 밤늦게, 이유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최씨를 만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는 “기억이 없다”고만 말을 흐렸다. 이 재판관이 “최씨가 말해온 것 중 문체부 지원사업으로 채택된 게 무엇이냐”고 묻자 김 전 차관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했기 때문에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이때 방청석에서 웃음이 일었다.
이날 오후 증인으로 출석한 CF감독 출신의 차은택(48·수감 중)씨는 “최씨가 박 대통령과 친하다고 말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눈으로 많이 봤다”고 답했다. 최씨가 사무실에서 국무회의 기록들을 컴퓨터로 작업하는 장면을 직접 목도했고, 특정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오면 회의하던 이들에게 “다 나가라”고 지시했다고 차씨는 증언했다. 새어나온 건 박 대통령의 목소리였다고 차씨는 밝혔다.
차씨는 최씨로부터 “전화가 갈 것”이라는 말을 들은 뒤 김기춘(78·구속)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김 전 실장은 차씨를 불러 “어른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다”며 정성근 문체부 장관 후보를 소개해줬다. 이에 차씨는 “최씨가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차씨는 “최씨가 2015년 들어서며 재단 이야기를 자주 했고, ‘대통령의 문화융성 사업을 문체부 공무원들이 못 해낸다. 민간이 해야 한다’며 짜증냈다”고 증언했다. 실제 설립된 미르재단의 프로젝트는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 최씨가 적어오는 ‘포스트잇’대로 이뤄졌다. 차씨는 “최씨가 기획을 시키고 브랜드가 드러나는 시점에는 꼭 박 대통령이 나타났다”며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광고 전문가들이 기획방안을 제안하면 최씨는 “다 필요 없다. 대통령께서 나타나셔서 한번 하면 그보다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차씨가 최씨에게 문화계 인사 몇몇을 추천하면 최씨는 ‘좌성향’이라며 배제했다고 한다.
양민철 이경원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차관 심야 호출·각의자료 수정… 재확인된 ‘崔 파워’
입력 2017-01-23 18:22 수정 2017-01-23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