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 건보’… 재정·수용자 반발 고려 단계적으로

입력 2017-01-24 05:01

정부가 23일 발표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은 ‘단계적 개편’이다. “저소득자에게는 깎아주고 고소득 자산가에게는 올린다”는 취지는 야당과 같다. 하지만 형평성과 수용성, 지속 가능성 등을 고려해 3년씩 3단계에 걸쳐 개편하는 방안을 꺼내들었다.

현행 부과체계는 직장-지역 간 건강보험이 통합된 2000년 만들어진 제도다.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만 성·연령과 재산·자동차에 보험료를 부과했기에 송파 세 모녀 사례와 같이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부담은 가중되고 고소득 피부양자는 무임승차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정부는 성·연령 등에 부과되는 평가소득은 과감히 없앴다. 하지만 재산과 자동차에 대한 지역가입자 건보료 부과만큼은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단계적 완화를 선택했다. 이들 건보료를 한번에 없애는 경우 연간 4조원이 손실된다. 현재 지역가입자 757만 가구의 재산보험료는 3조6000억원, 자동차 보험료는 4000억원이다.

그렇다고 결손 금액을 메우기 위해 피부양자 제도를 한번에 폐지하면 보험료가 갑자기 늘어난 이들이 반발할 수 있다. 개편안은 3단계에 걸쳐 고소득·자산가인 피부양자를 지역 가입자로 전환시킨다. 단계가 진행된 만큼 재산 보험료 공제를 많이 받거나 자동차 보험료를 면제받기에 보험료가 한번에 오르는 충격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

다만 개편안의 건강보험 재정 전망은 밝지 않다. 1단계에서는 9089억원, 2단계 1조8407억원, 3단계 2조3108억원의 비용이 연간 발생한다. 현재 20조원의 적립금이 있고 지지난해 3조원가량의 재정 흑자가 났지만 오는 2018년까지 추진 중인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과 맞물려 진료비 지출이 늘어나고 수입 증가가 둔화되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연 2조원 넘게 늘어나는 재정 변동을 2025년 이후에도 감당할 수 있을지 답하기는 어렵다”며 “누적 적립금을 다 쓰게 되면 평균 보험료율을 올릴 수밖에 없고 선의의 부담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50%에 불과한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도 남아 있다. 보건복지부는 총리실에 복지부와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지역가입자의 소득을 조사할 인프라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도 부정수급 등 재정 누수를 방지하고 급여비 적정 관리와 약제비 절감 대책, 실손보험 제도 개선 등이 차질 없이 이뤄져야 년 2조여원의 손실을 메울 수 있다.

단계적 개편으로 소요되는 9년의 기간이 길다는 지적도 많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남은경 사회정책팀장은 “3단계 추진 과정마다 저항이나 논란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부원장 이태진 교수는 “재산 보험료가 단계적으로 축소되며 여전히 고통 받는 계층이 있는 만큼 그 부담을 한번에 과감히 해결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