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란 구호로 공화당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을 무너뜨렸다. 24년 후인 지난해 대선에서도 미국에서는 ‘(미국)경제 우선’ 구호가 먹혔다. 빌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정치가 더 문제”라고 주창했지만 “문제는 경제야”를 외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에게 역부족이었다.
우리나라도 이명박(경제대통령) 박근혜(경제민주화) 정권이 모두 경제 이슈를 선점해 탄생했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백성은 배부르고 등 따뜻해야 한다. 민란도 혁명도 민주화운동도 결국 백성이 배고파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2017년 대한민국 대선에서만큼은 정치가 핵심 키워드가 될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정점으로 최순실 국정농단이 얼마나 나라를 피폐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린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나라가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박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대통령의 무책임과 무능이 최근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그로 인해 민심은 침몰했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제도 덩달아 얼어붙었다. 2015년 6월엔 메르스 발병으로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였다. 정부가 제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사태가 확산됐다. 유커(중국 관광객) 등 관광산업뿐 아니라 일선 산업 현장이 올스톱되는 등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취임 직후부터 은밀하게 계속됐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곪을 대로 곪다가 지난해 중순부터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최순실의, 최순실에 의한, 최순실을 위한 대통령의 엉터리 국정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민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이 묶였다. 주요 기업은 겁박을 당했으며, 힘없는 서민은 무시되고 방치됐다. 사드 한반도 배치와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 등 외교정책도 엉망으로 이뤄지면서 한·미 한·중 한·일 관계는 곳곳에서 삐걱댔다. 남북관계까지 사상 최악으로 내몰렸다. 중국의 사드보복 등으로 대중 교역을 하는 수많은 기업뿐 아니라 국내 관광산업도 치명타를 입었다. 개성공단은 폐쇄되고, 남북교역이 사실상 절연되면서 대북사업 기업은 잇따라 파산했다.
급기야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이어졌고, 벚꽃대선 등 대선 일정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정도면 ‘바보야! 문제는 대통령이야’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맞다. 정치 잘하는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유력 정치인들은 요즘 너도나도 대권에 나서겠다고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수백만 촛불의 열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뜨거운 열정과 절제된 냉정함으로 사실상 시민혁명이 진행 중이다. 이 시민혁명의 완결판은 대선이다. 그리고 어떤 지도자를 선택할지는 시민의 손에 달렸다. 꼼꼼히 살펴보고 제대로 뽑아야 한다. 시민 무서운 줄 알고, 시민을 위하고, 시민에 의해 나라가 굴러가도록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를 골라야 한다. 기업이 신바람 나게 일하게 만들고, 시민이 행복하게 활보하며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민생·경제 활성화를 위한 입법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와 협의가 잘되고, 외교와 남북문제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대통령을 찾아야 한다. 경제 잘하겠다고 입으로만 떠드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기업과 가계, 시장이 스스로 제대로 돌아가도록 정치만 잘하면 된다. 경제는 가장 중요한 정치의 결과물이다. 정치만 잘되면 경제는 물론 외교도 남북관계도 다 풀린다.
오종석 편집국 부국장 jsoh@kmib.co.kr
[돋을새김-오종석] ‘바보야! 진짜 문제는 정치야’
입력 2017-01-23 1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