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제발 힘없는 교회가 됩시다

입력 2017-01-23 21:28

근래 한국교회에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갈라져 있던 교회연합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해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가 출범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저런 이유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각기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기득권을 누리려 하고 소위 ‘힘’을 쓰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저는 교계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만 분열에서 일치로 가는 시도만으로도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우려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교총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는 단체가 새롭게 탄생했으니, 이제 한국교회가 하나 돼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새로운 단체는 한국교회가 얼마나 힘이 있는 곳인지 보여주고 한국의 제1종교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까. 저는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아니어야 합니다. 만일 이런 의도로 단체가 운영된다면 얼마 가지 않아 또 갈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힘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힘이 없다는 것은 세상의 힘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롱을 참지 못하면 십자가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조롱을 참으며 끝까지 내려오시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과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십자가에서 증명하신 것이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세상에서 힘을 가진 이들에게는 십자가가 참 미련하게 보일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거라고 하면서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혹시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마저 십자가를 미련하게 보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한국교회의 연합이 힘을 보여주려면 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힘을 쓰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일하신 방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으로 일하셨습니다. 희생하고 낮추셨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단체는 어떤 힘도 쓸 수 없는 곳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은 절대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는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단체에는 누구도 회비를 내지 않는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단체는 사례비 없이 섬기는 곳이다’라는 조건에서 대표가 되고 그 단체가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면 좋겠습니다. 모순적인 말입니다만 한국교회가 얼마나 힘이 없는 곳인지를 열심히 드러내면 참 힘이 있는 교회가 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개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전을 개혁하셨습니다. 때로는 무섭게 채찍을 드셨습니다. 처음 성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성령강림 사건은 초대 교회를 시작하게 했습니다. 무서운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제자들로 인해 이곳저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싸우는 교회들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쓴 편지들이 신약성경의 서신서입니다. 중세교회의 개혁 역시 ‘다시 말씀·은혜·믿음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새로워집시다’라는 말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셨을 때의 처음 마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처음 마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헌신했던 처음 마음이 개혁이고 능력입니다.

세상에 없던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세상에 없던 목사는 존재하지 않았던 목사가 아니라 처음 부르셨을 때의 마음을 가진 목사입니다. 세상에 없던 그런 교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의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저도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십니다. 힘없는 것 자랑하는 교회, 목사, 교인이 되는 꿈을 꿔봅니다.

김병삼 (분당 만나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