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부터 선봉군인민병원 현대화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의료진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보내온 초청장에는 내 이름이 빠져있었다. 로뎀제약 건축 착공예배에 대한 일종의 문책성 경고였다.
북한의 대외정책에는 이른바 ‘모기장론’이 있다. 교류가 많아질수록 ‘좋은 문물’(달러)도 들어오지만 ‘해충’(기독교 등 반사회주의 사상)도 묻어오므로 모기장을 쳐서 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라진·선봉경제무역지대는 북한의 딜레마가 담긴 실험장이다.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노동당이 공인한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제외한 전국 어디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다만 나진·선봉에는 투자유치를 위해 외국인들에게 예배를 허용하는 특별법이 존재한다. 따라서 나는 착공예배를 요구했고, 북한 당국도 처음으로 허용하였는데 하필 장소가 청계중학교 바로 앞이어서 현장을 목격한 학생들로 인해 파장이 컸던 모양이다. 갑작스런 돌발 사태로 9명중 방북 경험자라고는 칠순의 장기천(동대문교회) 감독 밖에 없었다.
나는 두만강까지 동행하며 주의사항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런 후에 일행이 두만강 다리를 건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장 백두산으로 향했다. 선원학교 교사로 와있던 이덕자 선생이 동행했다. 누적된 피로와 상한 마음으로 심신이 지쳐 있던 나는 장백폭포 아래 서자 울컥 감정이 북받쳤다. 털썩 주저앉아 기도를 시작하자 눈물이 쏟아졌다. 왜, 이 힘든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선생이 곁에서 시편 103편 1∼5절을 낭송해줬다. 나흘을 지내고나니 일행이 라진 방문을 마치던 날 영육이 회복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다.
무사히 방북을 마친 일행은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고 평가했고, 특히 영락교회 후원으로 치과 설비를 설치하고 북한 환자에게 진료까지 한 박태용 원장은 그때를 회상하며 감격스러워했다. 서울로 돌아온 박 원장은 북한에서 처음 진료한 남한 의사로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감격도 잠깐이고 이내 시련이 찾아왔다. 이 방문단을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국적자의 라진·선봉경제무역지대 출입이 전면 금지됐기 때문이다. 제약공장을 건립하기 위해 외상으로 건축자재를 보낸 재단 입장에서는 눈앞이 아득했다. IMF 외환위기가 1년째 지속되면서 선교비도 줄어 부족한 운영비는 물론 제약공장 건축 부채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방북이 재개돼야 약정된 헌금이 들어올 텐데, 당시로서는 남북관계가 풀릴 전망도 없었고, 기도 외에는 다른 해결 방법을 찾을 수도 없었다. 연말이 다가오자 더 이상 버틸 여력도 없었다. 일주일을 기도원에 다녀온 후 절박한 심정으로 조선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북경대표부를 찾았는데 뜻밖의 제안이 나왔다. 한민족복지재단 초청사업을 추진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초청장에 관한 얘기는 비밀로 한다는 조건이었다.
며칠 후 정말 초청장이 도착했다. 재단 관계자는 물론이고 통일부 관계자도 놀랐다. 남한 사람에게 유일하게 열려 있던 라진·선봉경제무역지대의 문이 닫힌 지 1년 만에 다시 열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김형석 <7> 北, ‘착공예배’ 문책으로 초청명단서 나를 제외
입력 2017-01-23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