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가장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이 내려졌는데 번복한다면 우리 국익엔 득보다 실이 많다. 대내외적으로 배치 결정을 공표한 상태에서 다시 한국이 먼저 바꾸는 것은 하책(下策) 중 하책이다. 국격은 손상될 것이고,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 배치 결정은 여러 면에서 부족했다. 외교적으로 살라미 전술이 필요했고 중국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었어야 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때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 가능성을 흘리기만 했어야 했다. 그 중요한 카드를 한 번에 써버린 것은 외교의 ABC를 건너뛴 것이었다. 차라리 북한의 5차 핵실험 때 배치를 결정했더라면 중국의 반대 명분은 약해졌을 것이다. 외교는 타이밍인데 너무 아쉽다.
외교안보는 국가 최고지도자의 영역이다. 그러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중국의 경제적 압박이나 대북정책의 비협조는 각오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비선 실세의 맹목적 우주기운에 기댔거나 4차 핵실험 직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전폭 지원하지 않은 것에 대한 대통령의 개인적 배신감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결코 믿고 싶지 않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지도자의 잘못은 뼈아프나 그것마저도 게임의 일부이며 우리의 몫이다.
번복 결정을 우리 스스로 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미동맹엔 큰 타격이다. 번복한다면 불가측의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사드는 동맹관계의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먼저 부정하게 되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된다. 지금은 동맹의 변화를 시도할 시점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금 국제사회에 보여줄 적당한 본보기를 찾고 있다. 한국이 ‘딱’이다. 트럼프 정부에서 벌어질 미국의 압력에 대처할 자신이 있는가? 트럼프발 후폭풍은 시진핑발 태풍 못지않다. 한국 외교는 미·중 모두를 아울러 100점을 맞아도 모자랄 판에 한쪽만을 선택해 50점만 받는다면 최악이다.
그렇다고 번복이 대중 관계를 전면 회복시키기도 어렵다. 중국이 사드 배치 번복을 압박하고 있지만 못 먹는 감 찔러보는 수준이다. 중국은 내심 번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 않다. 한국이 국내적 소용돌이 속에서 번복한다면 “생큐”다. 유사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압박하면 통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중국에 심어줄 수 있다. 결정의 번복은 우리 국격을 떨어뜨리고 동네북임을 자초하게 된다. 미국도 잃고 중국도 얻지 못하게 된다.
가장 좋은 방안은 한국이 다른 방식으로 트럼프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거래의 달인 트럼프에게 사드 이상의 대가를 보상하는 형식으로 만족시켜야 한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외교적 실수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만약 이것이 어렵다면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안고 가야 한다. 다음 지도자는 모든 책임을 박 대통령에게 미루어야 한다.
사드는 한·중 관계에서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중장기적으로 한반도 안정이 중국에는 더 중요하기에 한국 압박에는 한계가 있다. 트럼프판 대중 재균형이 서막을 올리려는 상황에서 더 몰아붙인다면 한국은 완전히 한·미·일 체제로 편입된다. 한국의 신정부가 들어서면 중국도 관계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다. 역시 우리만큼이나 사드 정국을 벗어나고 싶은 중국을 또다시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중국도 한국의 신정부와 새로운 5년을 사드로 날밤을 새우고 싶지 않다. 우리 스스로 중국에 다시 판을 깔아주고 지레 북 치고 장구 치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기고-황재호] 사드 번복 得보다 失이 크다
입력 2017-01-23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