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동생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의 국제범죄 의혹으로 대선 행보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 기상씨 부자에 대한 미국 연방법원 재판이 속도를 내고 있고, 미 법무부는 기상씨를 체포해 달라고 우리 정부에 사법공조 요청까지 한 상태다.
미국 뉴욕 연방검찰은 경남기업이 베트남 하노이에 건설한 초고층빌딩 ‘랜드마크72’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중개를 맡은 기상씨 부자의 범죄 혐의를 포착하고 지난 10일(현지시간) 기소했다.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사기, 돈세탁, 문서위조, 신용도용, 온라인 금융사기 등 혐의만 6개에 달한다.
미 연방검찰은 이번 사건을 ‘뇌물을 이용한 매각 시도’로 보고 있다. 경남기업은 유동성 위기를 겪던 2013년 회사 고문이던 기상씨에게 빌딩 매각 업무를 맡겼다. 기상씨는 매각 주관사로 아들 주현씨가 일하던 뉴욕 부동산 업체를 소개했다. 매각 주관 담당자가 된 주현씨는 미국인 브로커 말콤 해리스와 짜고 중동국가 고위급 관리를 돈으로 매수해 왕실에 빌딩을 매각하려 했다. 기상씨 부자는 브로커를 통해 경남기업 자금 50만 달러를 중동 관리에게 전달하려 했지만 브로커가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 미 연방검찰 공소장에서 확인된 사건의 개요다. FBI 국제부패전담반까지 가세한 중대범죄 수사였다.
반 전 총장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일단 공소장에도 ‘반기문’은 언급되지 않았다. 미 연방검찰은 그러나 기상씨 부자가 경남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가족의 명성(family’s reputation)’을 이용하려 했다고 적시했다. 주현씨가 2013년 9월 유엔총회 기간 뉴욕을 방문 중인 카타르 국왕에게 2만8000달러 상당의 선물을 줘야 한다며 돈을 요구하면서 “거래가 성사된다면 가족의 명성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의 명성까지 위험하게 하면서 거래를 성사시키려 하는데 회사가 뒷전이다”고 항의하는 식이다. ‘가족의 명성’이 반 전 총장을 의미하는지는 재판 과정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주현씨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체포됐지만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말콤 해리스는 지난 12일 멕시코에서 체포돼 다음날 뉴욕으로 압송됐다. 미 법무부는 21일 우리 정부에 기상씨를 체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반 전 총장 측은 “친인척 문제로 심려를 끼쳐 송구하지만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유엔을 10년 넘게 취재해 온 미국 언론 ‘이너시티 프레스’는 주현씨가 2014년 3월부터 유엔 산하 기관의 사무실 임대 등을 맡은 부동산 업체에서 일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반 전 총장이 사건을 인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22일 반 전 총장을 향해 “기상씨 부자가 사기행각 과정에서 반 전 총장을 지속적으로 언급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른정당도 “친인척 관련 문제는 대통령 자질 중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가세했다.
글=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팩트 검증] 반기문 “아는 바 없다”지만…‘명성’ 이용된 건 사실인 듯
입력 2017-01-22 17:43 수정 2017-01-22 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