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일대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촛불을 밝혀 영하의 기온을 데웠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열린 13차 주말 촛불집회에 전국에서 35만여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32만명의 시민이 모여 지난 14일 열린 12차 참가자 13만명보다 배 이상 많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에 집회 참가자가 더 늘었다.
전북 군산에 사는 박성수(39)씨 가족은 이날 오전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박씨 부부와 6살, 7살인 두 딸은 두꺼운 외투에 비옷까지 갖춰 입고 촛불을 들었다. 박씨는 “눈이 온다고 해서 든든하게 입고 나왔다. 설마 이 부회장이 구속될까 싶었는데 역시나 기각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무대에 올라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도 재벌 총수를 구속하지 못하면 헬조선은 바뀌지 않는다. 재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범죄자 이재용 즉각 구속하라’고 적힌 팻말을 흔들며 답했다.
이날 행진은 청와대, 헌법재판소, 명동 방면 3갈래로 진행됐다. 고현민(49) 김성희(49)씨 부부는 종로 SK 본사와 명동 롯데백화점, 종각역 삼성타워로 가는 대열에 참가했다. 고씨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이번 주에도 화가 나서 안 나올 수 없었어요. 버스기사는 실수로 2400원 빠뜨렸다고 해고당하는데, 재벌은 몇 백억원을 주고도 구속이 안 되는 게 말이 됩니까.”
퇴진행동 측은 ‘촛불 구속영장청구’ 퍼포먼스도 벌였다. 재벌 총수 가면을 쓴 사람들이 파란색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주최 측이 만든 ‘광화문 구치소’에 수감됐다.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등 보수단체도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 집회’를 열었다. 헌재에 박 대통령 탄핵안 기각을 요구했다. 태극기 집회 단상에 올라온 이들의 발언은 더 거칠어졌다.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탄핵이 인용되면 그때는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우리가 혁명 주체 세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경제보다 정의가 중요하다는 게 말이 되느냐. 특검은 집에나 가라”고 했다. 한 회원은 “지금 이 탄핵 상황이 조선시대로 치면 역모”라며 촛불집회를 비난하기도 했다. 적지 않은 참가자들이 ‘계엄령을 선포하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다녔다. 일베 활동으로 유명한 성호 승려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방패 모양의 팻말을 걸고 무대에 올랐다.
탄기국은 이날 집회에 15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이 논란을 의식해 집회 참가 추산 인원을 더 이상 공개하지 않으면서 주최 측이 참가 인원을 부풀린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이 이날 1만5500여명을 투입, 양측을 분리해 큰 충돌은 없었다.김판 기자 pan@kmib.co.kr
강추위에도… 뜨거웠던 ‘촛불-맞불’ 집회
입력 2017-01-22 17:59 수정 2017-01-22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