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대선판이 볼품없다

입력 2017-01-22 18:33

조기 대선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져서인지 야권에선 차기 대권을 잡아보겠다는 이들이 넘쳐난다. 포퓰리즘 공약들도 판친다. 실제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이 예상보다 빨리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헌재는 지금까지 2∼3일에 한 차례 재판을 열어 박 대통령 혐의의 실체에 대한 상당 부분을 확인했다. 게다가 국회 탄핵소추단은 최근 9명에 대한 증인 신청을 철회하고, 소추의결서를 보다 간단하게 작성해 다시 헌재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달 23일쯤 헌재가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늦어도 3월 초에는 탄핵심판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헌재의 탄핵 인용 결론이 나오면 60일 내인 4월 하순∼5월 초순 이전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사정이 이러니 대권을 꿈꾸는 이들이 발 빠른 행보를 보이는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현재의 대선판은 좀 실망스럽다. ‘촛불 이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탓이다. 촛불의 지향점은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이다. 그 일환으로 정치질서 재편도 요구된다. 4당 체제로 서막은 올랐다. 그러나 인물들은 ‘촛불 이전’ 그대로다. 그들의 언행도 거의 그대로다. 과연 낡은 ‘87년 체제’를 30년 만에 극복하고,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도약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지율 선두 주자는 정권교체를 강조한다. 자신을 차기 대통령으로 뽑아 정권을 바꿔야 지금까지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고, 일자리도 많이 생길 것이라고 역설한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것은 맞다. 그가 개인적으로 준비도 많이 했을 것이다. 문제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정권교체는 그가 2012년 대선 때도 사용한 캐치프레이즈다. ‘촛불 이후’의 비전으로는 ‘올드’하다는 느낌이다. 공약도 5년 전과 엇비슷하다. 또한 강한 자신감으로 대통령이 다 된 듯 행동하나 촛불은 특정인을 차기 대통령에 염두에 둔 적이 없다.

‘세계의 대통령’으로 10년간 외국에서 활동했던 이는 정권교체에 맞서 정치교체를 제시했다. 유권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정치권에 대한 반감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지세 확산을 꾀하고 있으나 정치교체를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그의 경력으로 볼 때 본받을 만한 점이 있지만 그건 과거일 뿐이다. 기성 정치권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그만의 언어와 행동을 통해 대선판을 재구성하는 게 필요하지만 현 상황으로는 기대난망이다. 기존 대선판 안에서 허둥대는 탓이다.

18대 대선 때 중도하차했던 이는 이번엔 완주할 것이며, 승산도 있다고 자신한다. 지난 총선 때 호남을 석권한 동력을 되살리고 보수정당에서 대선 후보를 내지 못할 경우 보수세력 표를 흡수할 수 있다는 판단인 듯하다.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지역주의와 보수후보 유무에 기대는 건 구태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새정치와 거리가 멀다.

그나마 안희정 충남지사는 눈에 띈다. 시대교체를 주장하는 그는 야권 주자들이 촛불을 의식해 촛불과 부합하는 주장을 펼 때 상반된 의견을 서슴없이 내놓고 있다. 사드 문제도 그렇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사태 때도 절제된 논리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통념을 깨고, 익숙함에서 탈피하려는 그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익숙함에 머물러 있다는 건 안주를 뜻하고, 안주하면 결코 새 나라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