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안보체제라는 큰 틀과 한·일 안보협력이라는 당면 과제에 걸림돌이 됐던 한·일 간 갈등이 2015년 말 일본군 위안부 합의로 일단 봉합되었다. 그 결과 한·중 간 대일 과거사 연대는 막을 내렸고 역사정의는 다시 후순위로 밀려났다. 이어 얼마 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체결되었고, 조만간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이다.
안보협력이 북한과 중국을 염두에 둔 것임은 물론이다. 사실 몇 해 전부터 정책 당국과 전문가들은 한·일 안보협력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논의해 왔다. 논의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규범론. 인권·민주주의, 시장경제, 대미동맹이란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협력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 한국 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을 아우르는 해양 민주주의 연대론의 강력한 논거다. 다른 하나는 안보 현실주의론.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 전개와 병참·후방기지로서 일본의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소극적 입장, 그리고 중국의 지역패권 추구에 대비해 양국이 세력 균형에 나서야 한다는 적극적 입장을 망라한다. 후자는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귀하거나 또는 그 반대 상황, 즉 극단적인 미·중 대결이나 담합 상황에서도 보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동반한다.
한·일 연대로 중국에 대항하자는 ‘항중연일’. 과연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가? 우선 대중 외교·안보 인식이 상당 부분 공유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첫째, 안보적 위협인식이 다르다. 일본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나 동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관계에 있는 중국을 직접적 안보 위협으로 보지만, 북한 위협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한국은 중국이 친북 자세를 취할 경우에 한해 이를 간접적 위협으로 본다.
둘째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시각차다. 오랜 교류 역사를 지닌 한국은 ‘강한 중국’이 존재하는 아시아가 정상적인 아시아라고 본다. 한편 일본은 중국의 부상을 아시아 최대의 불안정 요인으로 본다. 셋째, 중국의 의도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일본에는 중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자국의 영향권 아래 두려 한다거나 해양강국으로서 대중화권 맹주가 되려 한다는 담론이 지배적이다. 한국에선 G2론, 미·중 양강구도론이 우세하다.
물론 공통점도 적지 않은데 이 부분이 더욱 심각하다. 양국 대중 인식의 근저는 문명론에 입각한 국가 간 서열 의식이 자리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선진-후진으로 나누었다. 최근엔 민주주의-권위주의로 구분한다. 중국이 리더십을 발휘할 만한 자격이 없다는 멸시 의식은 여전히 견고하다.
한·일 모두 대중 관계를 대미 관계의 프리즘으로 보는 관성도 강하다. 한국의 경우 중국은 내심 한·미동맹이 중국에 대한 보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미·일동맹 대 중국 구도를 선호한다. 미국 중심적 질서 안에서의 ‘넘버2’ 지위 유지를 사활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또한 양국에 중국 문제는 국내 정치 문제다. 사드 건으로 한·중이 대립하자 이는 국내 정치를 양분하는 쟁점이 되었다. 논쟁 구도도 단순해졌다. 사드 배치 찬성은 한·미동맹 지지, 사드 배치 반대는 한·미동맹 훼손. 우리가 그토록 피해야 한다고 역설해 온 미·중 간 양자택일적 상황 속에 스스로를 내몰고 있다. 일본은 더 나아갔다. 지금 일본에서 반중은 친미이며, 반미는 친중이다.
인지적 관성을 극복하기 위해 한참을 왔지만 한참 더 가야할 듯하다. 강대국 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10년 전에 좌절한 ‘동아시아 공동체’ ‘우애·평화의 바다’ ‘다자주의’ 사상에 다시금 혼을 불어넣는 것이다.
서승원(고려대 교수·글로벌일본연구원장)
[한반도포커스-서승원] 抗中聯日 실현 가능한가
입력 2017-01-22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