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두 번의 부고(訃告)가 있었다. 한 분은 선배언니의 아버님, 한 분은 시댁의 큰할머님. 한 분은 한때 한동네에 살아서 자주 뵈었었고, 선배언니 집에 놀러갔다가 함께 밥도 먹었던 기억이 있는 분이었지만 한 분은 언제 뵈었는지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분이다.
빈소에 가면 우리는 고인을 위해 향을 피우거나 흰 국화를 올리고, 눈을 감고 추모하거나 절을 한다. 그것은 고인과 가족이거나 매우 가까운 이가 아니어도 예의를 갖춤으로써 남겨진 이에 대한 위로의 적당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 퀭한 눈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절을 하고,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준다. 눈물을 흘리면 소매로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떠주는 육개장에 밥을 말아 먹으며 인간에게 ‘영원’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다시 생각해본다. 영원히 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려고 계획도 세운다. 그러나 죽음 앞에 그 모든 것은 얼마나 사소하고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그러면서도 육개장에 홍어무침을 얹어 한술 뜨면. 삶은, 살아 있다는 것은 이토록 뜨겁고, 맵고, 짜고, 시고, 톡 쏘고. 그러면서도 참으로 감사하게 달다는 것도 깨닫는 것이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하는 날들이란 뜨겁고, 맵고, 짜고, 시고, 톡 쏘는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아니면 너무 그런 감각만 도드라져 다른 감각은 잃어버리고. 눈이 오고 비가 와도, 꽃이 피고 바람이 불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는 것. 지구가 자전을 하고 공전을 하며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모르고 사는 나날인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느껴야 할 ‘달다’는 맛도 모르고 사는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계절이 어떻게 가고 여기까지 왔나, 눈은 왜 이렇게 뜬금없이 펑펑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질척거리나 깜짝 놀라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먹은 홍어무침이 준 ‘삶의 단맛’은 이렇게나 세다.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삶의 단맛
입력 2017-01-22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