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겸손한 삶

입력 2017-01-22 20:55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고린도 교인들은 다양한 신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천한 직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상류 계층은 전체 교인 숫자에 비하면 미미한 수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70만 명의 인구 중 약 3분의 2에 이르는 숫자가 노예였습니다. 아마 고린도 교회에는 이 노예들이 많이 포함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당시 우상 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었고 한결같이 부도덕하고 천박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러한 악마의 도성 같은 고린도에 교회가 들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불의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것이기에 은혜입니다.

당시 노예는 주인의 재산 목록 일부였습니다. 언제든 죽임당할 수 있었고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었습니다. 노예가 낳은 자녀 역시 주인의 소유였습니다. 그들의 개성이나 인격은 조금도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그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들도 각각 고유한 인격체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만이 일으킬 수 있는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외모나 구비 조건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대우하십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나 권세, 부귀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아름답습니다. 인간들은 모두 그것을 흠모합니다. 그러나 본문 27∼28절을 보면 하나님은 그것을 버리시고, 부끄럽게 하시고 폐하려 하십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진전시킨다면 그들은 이러한 세상적인 지혜와 권세와 부귀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 위력으로 성도들을 유혹해 믿음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시고(시 2:4) 꺾어버리십니다. 그것도 세상의 미련하고 약하고 멸시받은 자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다면 세상적인 것은 모두 이처럼 허망한 것입니다(잠 1:7).

끝으로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변화를 가져온 것은 그들의 노력이나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그들의 신분을 변화시켰습니다. 삶의 모습도 변화시켰습니다. 한편 세상의 지혜자와 권세자, 그리고 가진 자 역시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부귀와 영화를 자랑하지만 영생에 견주어 그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약 4:14).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를 패망케 하십니다. 교만한 자는 낮추시지만 겸손한 자는 높이시고 존귀하게 하십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아멘.

송영준 목사(제주 루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