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와 도시는 스포츠 경기 못지않게 문화 프로그램을 중시해 왔다. 1912년 제5회 스톡홀름올림픽부터 일종의 ‘예술 경기’처럼 경연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이러한 방식은 40년간 지속되다가 1952년 헬싱키올림픽부터 경연 대신 자국의 최고 문화예술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올림픽에서 문화 프로그램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와 도시의 브랜드를 높이는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 때 각종 전시회를 통해 수준높은 디자인을 전세계에 뽐냈고, 스페인은 1996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당시 다채로운 예술 유산을 활용해 ‘관광’과 ‘문화’ 강국의 이미지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문화 프로그램을 선보인 것은 2012년 런던올림픽이었다. 영국은 2008년 9월 베이징올릭픽이 끝난 직후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문화 올림피아드’라는 이름으로 4년간의 문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당시 영국은 5개의 미션, 8개의 국가 프로젝트 등 치밀하게 문화 프로그램 계획을 세웠다.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예술위원회, 지역 공연장과 박물관, 도서관 등이 일찌감치 머리를 모은 결과다.
4년간 1억2662만 파운드의 예산이 투입돼 영국 전역에서 18만건의 행사가 치러졌다. 특히 런던올림픽이 열린 2012년에는 문화 올림피아드의 피날레로 12주간 ‘런던 2012 페스티벌’이 화려하게 개최됐다. 당시 영국의 문화 올림피아드는 세계 각국의 문화예술과 아티스트까지 초청해 문화예술 강국으로서의 자신감과 매력을 드러냈다.
그러나 평창동계올림픽을 1년 앞둔 한국의 문화 프로그램은 암울하기만 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내년 2월 9월 평창올림픽 개막까지 D-500일이었던 지난해 9월 27일부터 평창패럴림픽 폐막인 내년 3월 18일까지 전국 각지와 세계 주요 도시, 온라인을 무대로 ‘문화올림픽’을 펼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문체부가 주도하고 있는 문화올림픽에 대해 국민들이 체감하기는 어렵다. 치밀한 전략 없이 중구난방으로 개최되거나 단발적인 이벤트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7월 평창 스키점프대에서 국립오페라단이 ‘마술피리’를 공연한다거나 11월 개관하는 강릉올림픽아트센터에서 국립발레단의 ‘안나 카레니나’를 올린다는 등 문체부의 신년 계획에서 발표한 몇 개 프로그램 외엔 정확한 계획이 나온 게 없다. 특히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열리는 프로그램에 대해선 전혀 정보가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평창올림픽 기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개막식을 비롯해 사실상 문화올림픽의 중심이 될 강릉아트센터는 아직 개관 및 운영 프로그램도 잡혀 있지 않다. 당초보다 한달 미뤄진 11월 준공 예정이지만 이마저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11월 말부터 개관 페스티벌을 실시한다지만 공연장의 안정적 개관을 위해 필수적인 테스트 공연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직원도 2명뿐이다.
그나마 강원도가 D-1년을 앞둔 2월 9일부터 19일까지 11일간 강릉 평창 정선 일원에서 ‘동계올림픽 개막-1년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는 계획을 20일 발표했다. 여기에는 성화봉 공개, 2018명으로 구성된 올림픽 대합창, K팝 콘서트, 경포세계불꽃축제, 평창겨울음악제, 도립 공연단 등 전문예술단체 공연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후의 프로그램은 역시 알 수가 없다.
물론 동계올림픽은 하계올림픽에 비해 규모도 적고 소도시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화 프로그램이 매우 풍성하진 않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소치올림픽만 하더라도 2010년 밴쿠버올림픽 직후부터 4년간 전국적으로 올림픽에 맞춰 문화 프로그램을 실시해 왔다. 소치에서는 올림픽 기간 동안 소치아트페스티벌을 비롯해 많은 문화 프로그램이 선보여졌다.
이와 관련해 문화올림픽 TF팀을 맡고 있는 문체부 관계자는 “올해 문화올림픽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계획은 빠르면 1월말쯤 공식적으로 나올 것 같다. 그리고 2018년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의 프로그램은 오는 9월쯤 최종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준비가 너무 늦거나 미흡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안지나 박동민 기자
평창 ‘문화올림픽’이라더니… 밑그림도 못 그렸다
입력 2017-01-22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