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형석 <6> 제약공장 착공 감사예배서 북측 인사들 “아멘”

입력 2017-01-22 20:55
1998년 12월 나진 외국인진료소 근무를 지망한 의료봉사단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은성 치과의사, 박상은 내과의사, 박세록 산부인과 의사, 필자, 김경국 외과의사.

1998년 5월 15일은 제약공장(로뎀나무) 건립을 위해 최종 합의서를 작성하고자 방북키로 한 날이었다.

호텔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 후 회담장에 들어서니 평양에서 온 무역성 간부와 나진·선봉행정경제위원회 주요 간부들이 앉아 있는데, 숫자로는 1대 8이었다. 한 간부가 물었다. “로뎀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입니까.” 나는 즉시 해설을 했다. “서양 사람들은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기 때문에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로뎀나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나무는 사막 가운데 자생하는 콩과 관목으로 그 잎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기근이 들면 열매와 뿌리를 먹기 때문에 그야말로 생명나무라고 하지요.”

여기까지 이야기한 후 반응을 살피니 흥미를 느끼는지 나를 주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설립하려는 제약공장이 지금은 작지만, 앞으로 발전해서 세계로 수출하려면 이름부터 외국인들이 잘 알고 인정하는 것이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착공일은 7월 30일로 결정됐고, 거기에 덧붙여 선봉군인민병원 현대화사업을 위해 외국인 진료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그곳에 근무할 의료진으로 장기 6명, 단기 6명 모두 12명의 상주를 허가한다는 내용의 최종 합의서까지 서명했다.

내용을 접한 통일부에서는 사회문화분야 남북협력사업 제1호로 승인했다. 그로부터 2개월이 흐른 7월 29일 서울에서 제약공장 착공식에 참석할 대표단이 도착하자, 다음날 있을 착공식 일정을 의논했다. 상대는 평양에서 착공식 책임자로 내려온 장영호(가명) 무역성 국장이었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나는 한민족복지재단은 기독교단체이고 남측 대표도 모두 크리스천이니 반드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자, 그도 우리 입장을 잘 이해한다며 내 제안에 순순히 응했다.

그날 저녁 장 국장이 일행을 환영하는 만찬을 주최했는데, 이성희 목사의 식사기도가 끝나자 장 국장이 “에이멘”하고 화답을 했다. 신기한 듯이 쳐다보자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81년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김성락 목사에게 식사기도를 부탁하신 후 ‘아멘’이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수령님께서 하신 그대로 나도 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명쾌한 설명이었다. 드디어 7월 30일 청계동 제약공장 부지에서 9시30분부터 감사예배를 드렸다. 나진·선봉 경제자유무역지대가 선포된 후 처음 남측의 투자가 성사된 것이라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였다. 만찬도 마찬가지였다. 장기천 감독이 축도를 마치자, 장 국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에이멘”하고 선창했고, 남과 북의 참석자 50명이 일제히 “아멘”하고 화답했다.

관심은 재단 홍보대사인 탤런트 정영숙 권사에게 집중됐다. 누군가 “거,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는데 남측 여성도 참 예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껏 웃으며 이렇게 대꾸해줬다. “아니, 저 여성은 선천 출신입니다.” “아, 평안북도 선천이구만요.” 분단 이후 남한의 연예인이 민간 차원에서 방북한 최초의 사례였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