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일 현직 장관으로는 사실상 처음 법원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았다. 과거 정부에서 검찰 수사 단계, 늦어도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장관직을 사퇴하는 관례를 뒤집은 것이다. 조 장관의 ‘장관직 붙들기 전략’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개입 혐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항변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현직 장관이 단순 위법행위 의혹 차원을 넘어 영장청구 단계에서도 사퇴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처신이라는 날 선 비판도 많다.
조 장관은 그동안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본인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철저히 부인해 왔다. 그는 지난 9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집요한 추궁에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만 인정했을 뿐이다.
결국 조 장관이 마지막까지 버티는 이유는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기각에 대한 기대와 자신의 결백에 대한 확신의 표현으로 추정된다. 또 장관직을 사임할 경우 블랙리스트 관련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전 정부 장관들은 검찰 수사 단계 또는 구속영장 청구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대부분 사임했거나 경질됐다. ‘억울하지만 정부에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산업은행 총재 시절 뇌물수수 혐의로 1995년 검찰 조사를 받은 이형구 당시 노동부 장관은 구속영장 청구 직전 사표를 제출했다. 1999년 김태정 법무부 장관도 ‘옷 로비 의혹 사건’ 보고서 유출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중 경질됐다. 김 전 장관은 이후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역시 문화관광부 장관 재임 당시인 2000년 한빛은행 뇌물수수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직전 물러났다. 그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박 대표는 20일 “당시 사건에 친조카가 관련됐다고 해 조사받으러 갈 때 장관직 사표를 내고 갔다. 나중에 밝혀진 건 31촌 조카였다”며 “조 장관의 현직 유지는 국민과 특검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장관이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것이 사실이라면 해임건의안을 낼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조 장관 거취를 미리 정리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직 장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받고, 영장 청구 단계까지 가기 전에 황 권한대행이 조 장관을 설득하거나 결단을 내려 이 문제를 매듭지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이 조 장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인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등 큰 행사를 앞둔 상황에서 장관이 연일 뉴스에 계속 오르내리면 조직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체부 공무원 노동조합은 조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노조는 성명서에서 “(조 장관은) 반문화적 행태를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것만으로도 자격 상실”이라며 “주요 연루자들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을 강력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글=최승욱 김현길 장지영 기자 applesu@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기각 노린 ‘장관직 붙들기’?… 黃 권한대행 뭘 했나
입력 2017-01-20 18:23 수정 2017-01-20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