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수사가 블랙리스트 작성 총책임자로 거론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의 턱밑까지 도달했다. 특검팀은 다음달 예정된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서 박 대통령을 상대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는지 여부 등을 추궁할 예정이다.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성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5·25기)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영장 실질심사를 진행했다. 특검팀은 지난 18일 두 사람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비서실 지시→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실 작성→교육문화수석실 전달→문체부 실행’의 절차를 거쳐 작성되고 이행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를 총괄기획한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조 장관은 2014년 정무수석 시절 블랙리스트가 실무부처에 전달되는 ‘가교’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사법처리 이후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돌입한다. 박 대통령이 김 전 실장의 배후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여러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특검팀은 청와대와 문체부 관계자 조사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쯤 ‘문화·예술계 좌파 인사들에게 정부 예산이 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박 대통령이 ‘창비’ ‘문학동네’ 등 일부 출판사를 ‘좌파 출판사’로 언급하며 예산 삭감을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61·구속 기소)씨가 설립을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의 목적이 ‘문화·체육계 우파인사 지원’이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19일 안 전 수석과 최씨의 직권남용 등 혐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 같은 취지의 증언을 했다. 이 부회장은 “안 전 수석이 ‘문화계 좌파 인사가 많아서 정부의 일이 잘 추진이 안 된다. 그래서 우파 인사를 지원하는 재단을 만들어 정부 일을 지원하려 한다’는 말을 했느냐”고 검찰이 묻자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이 재단 설립에 나선 목적이 문화·체육계 좌파성향 인사를 억압하고 우파성향 인사를 육성하기 위함이었음을 폭로한 것이다.
특검팀 수사로 블랙리스트의 위헌성이 확인되면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에 대해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우리 헌법의 정신을 위반한 것”이라며 엄단 의지를 밝혀 왔다.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블랙리스트 작성에 박 대통령 개입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헌재가 박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는 데 참고할 가능성이 높다.
글=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블랙리스트 진원지 수사, 朴 대통령 턱밑까지
입력 2017-01-20 1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