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필리핀에서 50대 한국인 사업가가 현지 경찰관에 의해 경찰청사 안에서 살해된 사건이 최근 알려지면서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전·현직 경찰관 8명이 마약 혐의를 빌미로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납치해 1억2000만원의 돈을 뜯고 죽인 뒤에는 화장까지 한 참혹한 범죄였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필리핀에서 한국인이 피살되는 사례는 최근 몇 년간 매년 평균 10명 정도에 달할 정도로 많다. 현지 교민이나 관광객 등 무차별적으로 희생되고 있다. 필리핀의 치안 상황이 워낙 열악하다는 것이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후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경찰관에게 사실상 ‘살인면허’를 줌으로써 이번 경우 같은 유사범죄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교민들의 전언이다.
필리핀은 치안에 관한 한 막장국가다. 두테르테 정권이 들어선 후 인권유린과 법치붕괴 현상도 자주 목격된다. 그렇다고 이들만 탓하고 있을 수 없다. 우리 정부의 미온적 대응이 더 문제다. 사건이 발생하면 늘 ‘유감 표명’과 ‘철저 수사 촉구’만 외친다. 자국민이 해외에서 무참히 죽는데도 외교부는 소극적이다. 해외여행 중에 어려움을 당해 대사관에 전화를 걸면 “담당자가 없다”거나 “신고할 것인지 빨리 결정하라”고 채근하는 게 현실이다. SNS에는 외교 당국을 질타하는 글로 도배될 정도다. 제대로 된 영사(領事) 기능이 작동하는지 묻고 싶다.
외교부는 당장 마닐라 주재 한국대사를 소환하는 등 엄중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직접 필리핀으로 가 항의하는 초강수도 서슴지 말아야겠다. 피해자 유족들이 필리핀 정부를 상대로 반드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사설] 필리핀 경찰이 한인 살해해도 소극적인 외교부
입력 2017-01-20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