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선생이신 갈릴리 예수의 삶을 닮아가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여 년 전 독일에서 공부를 다 마칠 즈음 예수의 저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현지 사회복지기관인 ‘하이델베르크 디아코니아센터’를 통해 귀국 전까지 홀로 사시는 할머니들을 방문해 청소도 해드리고 말동무도 돼 드렸습니다. 어떤 할머니 집은 매우 큰 저택이었는가 하면 또 다른 할머니의 거처는 아주 열악했습니다. 어느 날 디아코니아 담당자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대인기피증으로 사람과의 만남을 끊고 장기간 외출을 거부하신 한 할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집에만 계신 외로운 할머니에게 말동무가 돼 드리기로 했지만 대화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할머니를 뒤로 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우울했습니다.
독일의 사회복지를 생각할 때 꼭 기억해야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독일 디아코니아의 대부’ 요한 하인리히 비헤른(1808∼1881)입니다. 신학생 시절 그는 ‘신앙은 삶으로 드러나야 하며 고난을 경험하는 이웃을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비헤른은 베를린에서 어머니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섬김의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이제 그 소명을 온전히 받아들이겠습니다.’
1951년 여름 비헤른의 고향이자 디아코니아 운동의 시발지인 함부르크 라우에하우스를 방문한 독일 대통령 테오도어 호이스는 비헤른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비헤른은 위대한 신학자가 되기 위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를 위대한 신학자보다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재촉했기 때문이지요.” 역설적으로 비헤른은 그 어떤 신학자들보다 위대한 방식으로 독일 개신교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수고가 생명의 길임을 알지만 우리 몸은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스스로를 ‘섬기는 자’(디아코노스)라 칭하셨고, 그를 따르는 우리 모두가 ‘섬기는 자’가 되라고 권고하십니다. 섬김은 우리가 갖춰야 할 여러 덕목 중 하나가 아닙니다. 섬김은 신앙의 본질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제자, 사랑의 선수가 돼야 합니다.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은 사회적으로는 무죄일 지라도,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유죄입니다.
“섬김이 아닌 그 모든 것은 도적질이다.” 마르틴 루터의 이 외침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사랑의 천재인 비헤른은 ‘사랑은 신앙 그 자체’라는 마음 하나로 이웃과 사회 현장에 파고들었습니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찬송가 301장 가사 중) 비헤른이 형제의 발을 닦아준 삶과 신앙의 유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섬김은 나의 구원이요, 사랑은 세상의 희망’이라는 마음으로 이웃의 발을 씻어주면서, 그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계신 사랑의 하나님을 자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전철 목사(한신대 신학과 교수)
[오늘의 설교] 사랑 없는 거리에서
입력 2017-01-20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