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난 중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힘들었던 순간에 함께하셨던 하나님, 삶의 고통 속에서 나를 건져 주셨던 그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 기억이 분명 힘이 될 것입니다.”
지난 17일 서울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에서 만난 권수영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고난 중에 있는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트라우마는 쉽게 잊히지 않는 심리적 외상이지만, 의미 있게 기억하면 ‘변혁의 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독교인에게 십자가는 장식품이나 은혜를 말하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상처를 보듬고 계속 기억해야 할 치유의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십자가 트라우마는 고통받는 사람을 더 많이 품을 수 있는 터전이 될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제자들에게 트라우마가 될 수 있었지만, 전혀 삶의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오는 고난을 극복하고 순교까지 하게 하는 내적 자원이 된 것이다.
권 교수는 상처 입은 사람을 보듬는 지역교회의 모델로 선부종합사회복지관,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와 함께 ‘힐링센터 0416 쉼과힘’을 설립한 안산 명성감리교회를 제시했다.
“교회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지역을 위한 교회, 주민을 위한 사랑방이 돼야 합니다.” 권 교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트라우마 자가 치유 방법으로 ‘깊은 호흡’을 주셨다며 몸의 자율신경이 요동칠 때 묵상 또는 명상을 할 것을 추천했다. “들숨과 날숨을 쉬며 ‘주님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말하는 호흡기도를 권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연상을 하며 기도하면 도움이 됩니다.”
그는 호흡기도에서 착안해 2014년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힐링미러 인스파이어(IN―SPIRE)’를 개발해 기술특허를 받았다. 힐링미러 인스파이어는 사용자가 심리적 안정을 가질 수 있는 깊은 호흡을 유도한다. 사용자가 디지털아트 작품에 호흡을 불어넣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연민의 마음을 누리게 한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그는 힐링미러 인스파이어를 안산 단원고와 힐링센터 0416 쉼과힘에 기증했다.
지난해 그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리멤버 0416-노랑나비’도 호흡기도를 연상하게 한다. 앱은 사용자에게 세월호 희생자들의 생일을 알려준다. 이때 사용자가 휴대전화 마이크에 긴 호흡을 불어넣으면 부활과 영원한 생명의 상징인 노랑나비가 날아서 별이 된 아이들의 영혼을 밝혀주는 추모의식에 참여할 수 있다.
“긴 호흡은 정서적인 안정감은 물론 미주신경계를 활성화해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일으킵니다. 우리의 숨이 모아지면 서로 상한 마음과 상처까지도 회복시키고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힐링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많은 분이 참여해 기억을 공유했으면 합니다.”
그는 분노로 인한 폭력범죄가 최근 늘어나는 건 빈부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모멸감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처방전을 마련해야겠지만 개인의 차원에서 각자 자애감, 자존감을 높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우연히 생긴,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최근 ‘나쁜 감정은 나쁘지 않다’(그리고책)를 출간한 권 교수는 분노가 꼭 나쁜 감정은 아니라 오히려 친절한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분노는 자신의 감춰진 상처를 정면으로 만나게 할 수도 있고, 자신이 유배시킨 감정을 안전하게 회복시켜 온전한 내면의 평화를 이룰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향해, 배우자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자주 짜증 분노 미움 등의 ‘나쁜 감정’이 터져 나온다면 반드시 자신의 내면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권 교수는 매년 1만건 넘는 상담 및 코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소장을 지난 10년 동안 맡고 있다. 그는 연세대에서 신학을 전공했고 미국 보스턴대와 하버드대에서 석사학위, 미국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
“주님, 내게 자비를 … 호흡기도 하세요”
입력 2017-01-20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