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15년째 특수학교 못 짓는 서울

입력 2017-01-19 17:31 수정 2017-01-19 20:23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사는 지적장애 1급 이석민(16·가명)군은 집에서 20여㎞ 떨어진 구로구 정진학교에 다닌다. 셔틀버스로 약 1시간 거리다. 석민군은 매일 셔틀버스에 오를 때마다 예민해진다. 울고 소리치는 친구들 틈에서 보내는 1시간은 평소보다 길고 힘겹게 느껴져서다.

사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8월 31일과 11월 4일 석민군의 집에서 가까운 강서구의 옛 공진초등학교와 서초구 옛 언남초등학교 자리에 특수학교를 짓는다는 행정예고를 했다. 중랑구에도 부지를 마련해 2019년까지 3개의 특수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이런 계획은 거센 반발에 중단된 상태다. 서울 시내에 특수학교가 설립된 건 2002년 개교한 경운학교가 마지막이다. 김은숙 교육부 특수교육과장은 19일 “전국을 통틀어도 10년이 지날 동안 특수학교를 못 지은 곳은 없다”며 “서울은 인구가 많아 주민들과 협의하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강서구에선 ‘특수학교설립반대비대위’(비대위)가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아직 특수학교가 없는 서울 8개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며 “강서구와 가까운 양천구와 영등포구, 금천구에도 특수학교가 없다”고 강조했다. 강서구에는 이미 특수학교인 교남학교가 있으니 다른 곳에 신설하라는 주장이다.

지역구 의원인 김성태 바른정당 의원도 지난달 5일 지역구민들에게 의정보고를 보내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의 심사를 요청했다”며 “특수학교 설립은 강서구민의 동의 없는 독단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장애인 학부모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19일 “김 의원은 장애학생들의 교육기회를 뺏고 있다”며 “지난달 1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김 의원을 제소해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시교육청은 논란에도 특수학교를 짓겠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는 이달 초 “옛 공진초 부지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건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시교육청은 정확한 예산을 논의해 약 3년 동안 특수학교 건립에 나설 계획이다.

김 의원과 비대위는 대체부지를 마련해줄테니 옛 공진초 부지는 국립한방의료원 자리로 사용하자는 ‘대체부지 안(案)’을 내세운다. 공진초 부지는 주변에 허준박물관, 허준탄생지 등이 있는 독특한 지역이라 특수학교 부지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대신 공진초에서 대중교통으로 약 20분 거리인 마곡지구를 대체 후보지로 꼽는다.

강복순 전국특수학교 학부모협의회 대표는 “서울시에서 대체부지를 마련했다는 확답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공진초 부지를 주민들에게 넘겨주면 특수학교 건립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거론되던 대체부지가 특수학교 부지로 부적합하다고 판정된 뒤 또 다른 대체부지를 논의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며 “하지만 아직 공식적인 협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시 29개 특수학교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학생의 반도 수용하지 못한다. 지난해 4월 기준 서울시내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학생은 1만2929명이지만 정작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4496명(34.7%)에 그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주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2013년처럼 특수학교 건립이 무산될 수 있다”며 “시간을 두고 주민들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