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 감방 문턱에 섰다가 기사회생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부장판사는 18시간가량의 숙고 끝에 19일 오전 4시50분쯤 구속영장 기각란에 도장을 찍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뇌물죄 수사를 원점으로 돌려놓는 결정이었다. ‘부정한 청탁’에 대한 소명 정도, 삼성이 최순실씨 일가에 지원한 돈의 대가성 여부에 대한 판단 부분에서 결과가 갈렸다.
특검은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2800만원을 제3자에게 제공한 뇌물로 봤다. 제3자 뇌물죄의 구성 요건인 부정한 청탁의 존재 여부는 특검과 삼성이 가장 첨예하게 맞부딪힌 지점이었다. 특검은 40여쪽에 달하는 구속영장의 상당 부분을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관련 부정한 청탁과 자금 제공 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에 적힌 VIP(대통령) 지시사항, 청와대 참모진이 이 부회장 독대 전에 만들어 올린 대통령 말씀자료 등을 근거로 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2015년 6월말 안 전 수석 등에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될 수 있도록 잘 챙겨보라”고 지시하는 등 노골적으로 이 부회장을 도운 정황을 부각시켰다. 사전에 합병 지원 약속이 돼 있었고, 이에 따라 삼성의 최씨 일가 지원이 실행됐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이런 특검의 공격이 추정·추단의 결과물이라는 논리로 맞섰다. 안 전 수석의 수첩 내용 등이 독대 전후의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일 뿐 실제 독대 자리에서 오간 대화 내용과 일치하지는 않다고 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합병 찬성 의결은 2015년 7월 10일 있었는데,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는 2주 뒤인 25일 이뤄졌다는 점에서 통상적 뇌물의 선후 관계인 ‘뇌물수수→청탁 성사’와 맞지 않는다는 점도 제시한 점도 알려졌다.
특검은 삼성이 최씨의 독일 회사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지원을 약속한 213억원의 경우 단순 뇌물공여로 판단했지만 삼성은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삼성 측은 줄곧 박 대통령과 최씨의 일방적 강요·압박에 따른 지원이었다고 항변해 왔다.
사실관계를 둘러싼 양측의 해석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조의연 부장판사는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의 존재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혐의 입증 책임이 있는 특검의 법리상 구성이 구속영장을 내줄 만큼의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조 부장판사는 기각 사유로 ‘뇌물 범죄 요건인 대가관계,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 부족’ ‘구체적 사실 관계와 법률적 평가에 대한 다툼의 여지’ 등을 들었다. 박 대통령 등 수뢰 혐의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짚었다. 이규철 특검보는 “대통령 대면조사가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적절치 않은 지적”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이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사법적 유·무죄 판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조 부장판사도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라는 단서를 달았다. 특검은 “피의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에 있어 견해 차이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유감을 표하는 동시에 뇌물죄 수사에 대한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향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특검과 삼성 측의 계속된 법리 전쟁이 예고돼 있는 것이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영장 기각 사유는…"부정 청탁 소명 부족"
입력 2017-01-2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