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들썩이기 시작하면서 정부가 바빠졌다. 이명박정부 시절 유가 상승을 빌미로 공정거래위원회를 ‘물가위원회’로 만드는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물가를 잡으려 했던 모습이 ‘오버랩’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지표물가와 체감물가 간 괴리감을 없애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명박정부 4년 차인 2011년 유가 상승 등에 따라 물가상승률은 4.0%를 찍었다. 이에 정부는 52개 생필품을 묶은 ‘MB물가지수’를 만들고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신설하는 등 물가 옥죄기에 나섰다. 당시 공정위는 라면 등 생필품의 국내외 가격 차를 조사하고 가격담합 여부를 전 업종에 걸쳐 점검하면서 물가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강압적 물가 안정책에도 물가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정권 말을 틈탄 기업들의 눈치 보기 식 가격인상을 억제하기에는 정부의 힘이 부족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장기적인 저성장세와 유가 하락으로 저물가는 오히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해까지 저물가를 걱정하던 때와 지금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유가는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탄핵정국의 국정공백을 이용해 기업들은 은근슬쩍 가격을 올리고 있다.
물가에 손놓고 있던 정부도 화들짝 놀라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는 19일 설 대비 물가 안정방안을 마련했다. 물가정책이 주요 사안으로 떠오른 것은 이번 정부 들어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 예측대로 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앞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우세하다는 데는 전문가들이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민생물가 실무 태스크포스(TF) 등을 구성하는 등 물가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이와 함께 실물지표와 체감물가 간 괴리감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데이터를 개발할 방침이다. 물가상승률 가중치 적용이 현재 산업변화나 소비구조를 제때 반영하고 있지 못해 현실적인 물가지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정부는 오는 11월 1인 가구 등 가구 특성을 반영할 물가지표를 개발할 계획이다.
정부가 물가 다잡기에 나섰지만 과거와 같은 옥죄기 방식으로는 지난 정부의 실패를 반복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세대 성태윤 경제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면 경기가 함께 좋아져야 하는데 최근 물가 상승은 식료품과 농식품에만 집중되고 있다”면서 “디플레이션을 벗어날 때의 경기회복 혜택은 발생하지 않으면서 소비자의 구매력만 약화시켜 경기침체를 심화시키는 안 좋은 물가 상승세”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를 인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유가가 갑자기 뛰면서 정부 역할이 디플레이션 방어에서 ‘인플레(물가상승) 파이터로 변했다”면서 “유가와 환율 등 대외변수를 모니터링하면서 불합리한 가격인상을 억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신준섭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정권 말기마다 들썩… ‘찍어 누르기’식으론 안된다
입력 2017-01-19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