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 혐의의 ‘소명’ 정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구속영장 심사에서 범죄 혐의가 얼마나 소명됐는지 본다. 기소 후 형사재판에서 필요한 범죄의 증명보다는 한 단계 낮은 수준이다. 재판에서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범죄가 촘촘히 증명돼야 법관이 유죄를 선고한다. 한 명의 억울한 피고인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영장 단계에서는 범죄 혐의가 개연성이 있을 정도로 소명되면 영장이 발부된다. 구속 후 무죄가 선고되는 피고인들도 있다.
조 부장판사는 뇌물범죄의 요건인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뇌물을 받은 사람이 준 사람에게 대가를 줘야 한다. 적어도 현 수사 상황은 특검이 설명한 인과관계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영장판사 입장에서는 영장을 발부한 피의자가 무죄를 받으면 찝찝할 수밖에 없다”며 “이대로 기소하면 무죄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영장을 기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영장 기각이 곧바로 무죄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추가 수사와 재판 상황에 따라 유죄가 선고되는 사례도 많다. 2014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입법로비 혐의를 받는 신계륜·신학용 전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소명 정도가 부족하다며 기각했지만 이들은 이듬해 12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서는 한국 수사기관이 유독 구속영장에 집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에서는 구속영장을 발부받으면 흔히 ‘골인시켰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상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한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피의자도 인권이 있기 때문이다. 불구속 상태에서도 수사 및 재판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신 구속은 실형 확정 시 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구속 피고인이 무죄로 판명되면 국가는 형사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법원도 이런 지적 등에 맞춰 영장심사에서 점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소명 범죄 개연성만 있어도 영장… 증명 범죄 의심 여지 없어야 유죄
입력 2017-01-19 17:42 수정 2017-01-19 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