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로 걸어 들어온 마술사.’ 판타지 소설 제목이 아니다. 1969년 ‘초능력 전사’를 양성하고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비밀리에 진행한 실험 보고서 제목이다. CIA는 18일(현지시간) 기밀이 해제된 문서 93만건 1200만여 페이지를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CIA가 수집한 정보와 외국자료 번역본, 사진 등으로 현대사의 여러 사건과 미스터리가 두루 담겨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CIA가 투시(透視)나 텔레파시 등을 무기로 삼는 초능력 전사를 키우기 위해 1998년까지 진행했던 ‘스타게이트’ 프로그램 관련 문서들이다. 특히 70∼80년대 초능력자로 유명세를 탔다가 사기꾼으로 몰렸던 이스라엘 출신 마술사 유리 겔러(71)에 대한 보고도 포함됐다.
CIA는 73년 8월 4일부터 11일까지 8일간 캘리포니아 스탠퍼드연구소(SRI)에서 겔러의 초능력을 시험했다. 겔러는 전류가 통하지 않는 밀실에 격리된 상태에서 다른 방의 연구자가 그린 그림을 상당히 유사하게 복제해 그려냈다. ‘송이(bunch)’라는 단어를 받은 연구자가 포도송이를 그리자 겔러는 다른 방에서 “보라색 동그라미들을 봤다”면서 이내 포도 한 송이를 그렸다. ‘태양계’같이 추상적인 개념에 관한 그림도 비교적 정확하게 따라 그렸다. 연구원은 “(겔러는) 단순히 목표 그림을 복제해내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과정을 통해 연구자의 생각을 읽어낸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의 초자연적 지각능력을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증명했다”고 결론지었다.
미확인 비행물체(UFO) 관련 보고도 흥미롭다. 뉴욕포스트는 이날 공개된 자료 중 UFO를 키워드로 포함한 자료가 1738건이라고 보도했다. 66년 8월 3일 작성된 보고서에는 이란과 소련 국경에서 보름달처럼 강렬하게 빛나는 흰 구체가 5분에 걸쳐 세 차례 나타났다고 적혔다. 52년 10월 13일 문서는 소련이 UFO 현상을 미국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UFO가 경보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냉전시대 소련을 도청하기 위해 베를린 밑으로 땅굴을 판 ‘베를린 터널’ 프로젝트,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베트남전쟁, 나치 전범, 피그만 침공 사건 등에 관한 문서도 공개됐다. 투명 잉크 제조법이나 밀봉된 편지를 열어보는 법 등에 대한 보고서도 있었다.
한국 관련 자료는 6·25전쟁과 5·18광주민주화운동, 전두환·노태우 정부 당시의 한국 내 상황 등에 대한 것이었다. 이 중에는 앞서 5·18기념재단이 주한 미국대사관으로부터 전달받은 5·18 관련 기밀해제 문서 89건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김대중 재판’이라는 제목으로 5·18 이후 학생들에 대한 재판을 다룬 한 건을 제외하고 88건은 이미 재단 측이 확보한 문서로 확인됐다.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발칵 뒤집을 만한 정보는 찾기 어려웠다. 뉴욕타임스(NYT)는 “자료 대부분은 지루하다”고 평가했다. 이날 온라인에 공개된 문서들을 이전에도 볼 수는 있었다. CIA가 1999년 이후부터 생산된 지 25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심사해 주기적으로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메릴랜드주의 국립 문서고를 직접 방문한 뒤 CIA기록검색도구(CREST)가 깔려 있는 컴퓨터 4대로만 열람할 수 있었다. 외부 전송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온라인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안방에서도 누구나 기밀이 해제된 문서를 볼 수 있게 됐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美 CIA, 마술사 유리 겔러 초능력 실험했다
입력 2017-01-19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