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목사 “교회 밖 세상서 ‘살림의 길’ 걷습니다”

입력 2017-01-19 20:24
박철(오른쪽) 좁은길교회 목사와 김주숙 사모가 2015년 가을 옥상 텃밭에서 김매기를 하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위는 박철 목사의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표지. 박철 목사 제공
“어느 날 제가 예수를 팔아먹고 사는 ‘밥벌이 목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철(62) 좁은길교회 목사는 19일 전화인터뷰에서 3년 전 교회를 사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85년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를 시작해 19년을 시골에서 목회했다. 이후 대도시 부산으로 옮겨 담임을 한지 10년째 됐을 때였다. “예수님은 제게 ‘살림’을 가르치셨는데, 저는 ‘죽음’ 가운데 무력하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견딜 수 없었다. 김주숙(61) 사모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고, 박 목사는 2013년 12월 담임목사직을 사임했다. “주위에선 ‘무모하다’며 말리셨죠. 하지만 제가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목회를 하지 않고 있다고 깨달은 이상 그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듬해 초 좁은길교회를 개척했다. 어느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렸는데 20여명이 모였다.

‘민주주의 후퇴라는 사회적 과제, 남북분단이라는 민족적 과제, 환경재앙이라는 지구적 과제에 신앙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다.’ 설립 취지의 일부다. 박 목사는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달려갔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집회, 원자력발전소 건설반대 집회, 촛불 집회 등등.

지난 연말에는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반대 현장에도 나갔다.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경찰이 막무가내로 다뤘어요. 학생들과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갔어요.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에서 쓰러졌는데 허리를 다쳐 괜히 주목을 받게 됐죠. 허허.”

시인이기도 한 그는 전날 열린 소녀상 서포터즈 행사에서 ‘소녀상과 할미꽃’이란 시를 낭송했다. 그는 부산 지역 전체를 목회지로 삼고 있었다. 힘들지 않은지 궁금했다. “힘들 때도 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주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목사는 지금이 이전보다 ‘살림’의 목회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지금의 목회가 자신의 느린 성향에도 맞다고 한다. “요즘 자유로운 일과를 보내면서 느림이 주는 영성이 매우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는 매일 출근하는 아내를 위해 커피를 내리고 시어(詩語)를 메모하고 산책을 한다.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오후에는 1시간가량 독서를 하고 저녁에는 아내와 세 자녀를 위해 밥을 짓는다.

“김치찌개 된장찌개는 기본이고 미역국도 잘 끓이고 각종 탕도 맛있게 해요. 제가 사임한 뒤 아내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저는 주부 역할을 하고 있어요. 덕분에 제게 가장 중요한 목회지인 가정을 돌보게 된 셈이죠.” 느리게 사는 그는 행복한 것 같았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선언하셨죠. 우리는 교회 밖 세상으로 나가 행동을 해야 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모이는 교회로서의 기능보다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기능을 강화했으면 좋겠어요. 현 시국에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감도 느껴야 하고요.”

박 목사는 최근 목회 이야기를 담은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신앙과지성사)를 펴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