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은 ‘기업의 별’로 불린다. 동기 100명이 입사하면 1명만 임원을 달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올라갈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많은 연봉, 자동차 제공 등 누리는 혜택도 많다. 단점도 있다. 임원을 달기 전까진 정규직이었던 신분이 임원이 되고 나선 해마다 계약해야 하는 비정규직으로 바뀐다. 위풍당당한 임원들이 연말만 되면 초초해하며 재계약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 네이버가 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단행했다. 정확하게는 임원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직원을 정규직 신분으로 변경했다. 이해진 의장, 한성숙 대표이사 내정자 등 등기이사를 제외한 임원은 모두 정규직이 됐다. 대신 각종 복지 혜택은 과거에 비해 다소 줄었다. 임원 대접을 받으면서도 정규직 신분이 됐기 때문에 정규직 임원이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는 페이스북,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선 조직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특징은 빠른 의사결정과 추진력이다. 이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를 리더로 세운다. 연공서열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1∼2년 차 주니어가 리더가 되고 1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이 팀원으로 호흡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 프로젝트는 빠르면 몇 개월 단위로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구성원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이 중 살아남는 건 사업화한다.
네이버가 한국 기업문화에 이질적인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건 실리콘 밸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존 임원들이 단순히 지시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다른 직원들과 함께 업무 성과를 내달라는 주문이다. 네이버는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등 글로벌 IT 기업이 군침을 흘리는 미래 산업에서 정면 승부를 선언했다. 인력과 자본에서 외국 기업보다 열세에 있는 네이버로서는 쓸 수 있는 자원을 최적화하는 방법밖엔 없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은 네이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경제의 국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 기업은 외국 시장뿐 아니라 한국 시장에서도 글로벌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처럼 국경이 울타리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 세계 1등이 되지 못하면 국내 시장을 지키는 것도 어렵다. 기업들은 방심할 틈이 없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연공서열이 강한 한국 기업문화에서 수평적 조직문화가 정착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당장 모두가 불편한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제까지 내가 모시던 상사를 팀원으로 두게 되는 후배, 자기 지휘하에 있던 후배의 지시를 받게 되는 임원 모두 상당한 정서적 불편함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함을 빼고 ‘님’으로 호칭을 통일하는 것도 처음에는 입에 잘 안 붙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수평적인 조직 만들기를 추진했다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요한 건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최적의 방안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내 정치 같은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어제와 같은 오늘에 만족하는 무사안일주의로는 기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때다. 멈추면 제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한참 뒤처지는 게 현실이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
[세상만사-김준엽] 정규직 임원… 네이버의 실험
입력 2017-01-19 18:13 수정 2017-01-19 2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