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행보를 하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기자를 겨냥한 욕을 해 구설에 휩싸였다. 반 전 총장은 18일 대구의 한 만찬장에서 인터넷 매체 기자들로부터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을 집요하게 요구받았다. 그는 만찬을 마치고 나오다가 참모에게 “이 사람들이 와서 그것(위안부 문제)만 물어보니 내가 마치 역사의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이라며 “나쁜 놈들”이라고 말했다. 면전에서 한 것은 아니고 근처에 있던 한 기자의 녹음기에 잡혔다.
반 전 총장은 저녁 자리에서 자신에 대한 사실이 왜곡·과장돼 보도되고 있다며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그는 “남을 헐뜯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그러는 건 대한민국 국민이 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인터넷에 가짜 뉴스까지 돌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공인이 언론인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반 전 총장이 유력 대선 주자가 아니라면 기자들은 물어봐달라고 사정해도 묻지 않는다. 더욱이 질문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욱해서야 되겠는가.
지지율 정체 등 반 전 총장이 답답해하는 현재의 상황은 스스로 부른 측면이 강하다. 한국에 온 지 1주일이 넘었지만 비전은커녕 변변한 메시지를 내놓지 못했다. 인천공항에서 ‘통합과 정치교체’를 주창했지만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정국을 주도하거나 적어도 화두가 될 만한 메시지를 발표했다면 자신이 주장한 ‘약간의 실수’에 시달리는 일도 없었을 게다.
반반(半半) 행보에 실망한 이도 적지 않다. 반 전 총장은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 영호남 보수와 진보의 상징적 지역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가 하루아침에 이 땅의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대통합주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지층과 야권에서 도대체 정체성이 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돈이 없으니 기성 정당에 들어가겠다는 것인지, 제3지대에서 창당을 하겠다는 것인지도 애매하다. 측근 간 반목이 심해 말과 행동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혼선의 책임은 반 전 총장에게 있다. 대권은 누가 손에 쥐어주지 않는다. 대통령감의 자질과 능력은 본인이 입증해야 한다.
[사설] 대선 주자답지 않은 반기문 행보
입력 2017-01-19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