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가 총수 일가 중 처음으로 구속될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났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고리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뇌물죄 적용을 검토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전날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범죄 혐의에 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전날 오전부터 4시간 넘게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이 부회장은 영장 기각이 확정된 직후 곧바로 귀가했다. 앞서 특검팀은 비선실세 최순실(61·구속 기소)씨에게 특혜성 지원을 한 혐의(뇌물공여 등)로 지난 16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문제가 걸린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박 대통령 지원을 받는 대가로 최씨 측에 약 433억원의 금전 지원을 했다고 봤다. 433억원에는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출연금(204억원), 삼성이 최씨 소유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와 맺은 컨설팅 계약(213억원), 최씨의 조카 장시호(38)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삼성의 후원금(16억2800만원) 등이 모두 포함됐다.
그러나 법원은 삼성의 금전 지원을 대가성으로 보기보다 삼성 측이 내세운 ‘박 대통령의 공갈·협박에 의해 이뤄진 어쩔 수 없는 지원’이란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와 연계해 박 대통령에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하려던 특검팀의 수사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미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기업들의 두 재단 출연금이 뇌물이 아닌 강요에 의한 피해 성격이었다는 판단을 내려 박 대통령과 최씨에게 직권남용에 의한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적용한 바 있다.
특검팀의 남은 대기업 수사도 난관이 예상된다. 삼성 외에 현대차(128억원) SK(111억원) LG(78억원) 포스코(49억원) 롯데(45억원) 등 주요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냈다. 특검팀은 이들 중 기금 출연의 대가성이 의심되는 기업들을 선별해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총수 사면거래 논란에 휩싸인 SK와 CJ, 면세점 허가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롯데 등이 우선 수사 대상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삼성의 경우와 같이 법원이 뇌물죄 혐의 적용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경우 대부분의 기업이 사법처리를 피해나갈 공산이 크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이재용 영장 기각… 특검 수사 차질
입력 2017-01-19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