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만 본다… 한국판 ‘가짜 뉴스’ 횡행

입력 2017-01-19 05:17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하자마자 ‘움짤’(움직이는 짧은 영상)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한국판 ‘가짜(fake·페이크) 뉴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억울해 한다. 반 전 총장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로 대선 국면이 갑자기 당겨지자 편파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정치권의 일들이 진실처럼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심리’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14일 반 전 총장이 성묘를 하면서 퇴주(退酒·제사 지낼 때 술을 물리는 일)는 하지 않고 음복(飮福·제사 후 음식과 술을 먹는 일)만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근거는 몇 초 길이로 짧게 편집된 영상이었다. 반 전 총장 측은 1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악의적으로 편집된 영상으로 오해가 일어난 것 같다”며 “어르신의 안내대로 제례를 올린 뒤 음복을 했다”고 해명하며 전체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에서 반 전 총장은 퇴주를 하고 나서 음복을 한다.

앞뒤 맥락이 잘린 짧은 영상이나 한 장의 사진은 오해를 부르기 쉽다. 짤방 주인공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이런 그림은 SNS로 빠르게 퍼져간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을 더 굳혀주는 셈이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특히 정치적 사안의 경우 자신의 신념과 유사한 내용을 접하면 기사의 출처나 사실관계를 분명히 따지지 않고 믿고 싶은 것을 선택적으로 믿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확증 편향이 심해지면 ‘절반의 진실’이 아니라 아예 거짓 정보를 사실인 양 믿는 일까지 발생한다. 대표적인 게 가짜 뉴스다. 가짜 뉴스는 거짓 정보를 실제 인터넷 기사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해 속이는 뉴스를 말한다.

지난달에는 ‘영국과 일본의 저명한 학자들이 한국의 탄핵운동과 시위 현장을 지적하고 있다’는 내용의 가짜 뉴스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단체 회원들 사이에 퍼졌다. 하지만 이 기사에 등장한 외국 학자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주로 게임과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름이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거짓인 줄도 모르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 가짜 뉴스를 카카오톡 등으로 퍼트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변호인인 서석구 변호사가 헌법재판소에서 언급한 북한 노동신문 기사도 가짜 뉴스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 변호사는 지난 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2차 변론기일에서 국회 측이 언론 보도를 증거로 제출하자 “이게 증거가 될 수 있는가. 북한 노동신문은 남한이 김정은의 명령에 따라 횃불을 들었다고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서 변호사는 노동신문의 가짜 뉴스에 속았다. 통일부에서도 (김정은이 명령했다는) 이런 내용의 노동신문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고 주장하며 서 변호사의 사과를 요구했다.

아예 악성 ‘지라시’가 ‘긴급뉴스’라는 제목으로 유포되기도 한다. 보수단체 회원들 사이에서는 ‘상당수의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들이 서울에 잔뜩 와있고, 야권을 중심으로 선동 시나리오가 짜여 있다’는 내용이 카카오톡을 통해 퍼지고 있다. 출처는 ‘거물급 간첩의 최측근이 술 먹고 중얼거린 내용’이라고 쓰여 있다. 빨리 이 글을 전파해야 한다는 당부까지 담겨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나주 남평 문씨 빨갱이설’도 돌고 있다. 문씨 성을 가진 인물들을 종북세력이라고 공격하며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퍼뜨린다.

가짜 뉴스가 다가올 대선에서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한 교수는 “인터넷 기사가 크게 늘면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어렵거나 검증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정보를 접할 가능성이 적은 사람들일수록 가짜 뉴스를 실제로 믿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가짜 뉴스만 접한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가짜 뉴스가 지난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사례를 본 독일은 총선을 앞두고 가짜 뉴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페이스북은 지난달 미국에서 도입한 가짜 뉴스 필터링 서비스를 독일 등 다른 나라에도 확대할 계획이다.











글=김판 기자 pan@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