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품위있게… 아래 세대와 연결되고 싶다면?

입력 2017-01-19 18:56

‘홍시여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

책머리에 나오는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이 문장을 읽고 코끝이 시큰해진다면 당신은 이미 조직의 ‘퇴물’이다. 퇴물이 되지 않겠다고 발버둥친 날이 많았던 당신이라면 이 책 ‘선배 수업’(서해문집)은 아주 좋은, 새로운 답이다.

노년에 “경제적인 궁핍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것이 존재가치의 쇠락”이라고 말하는 이 책은 나이 들어서도 어떻게 ‘의미 있는 타자’가 될 수 있을까 묻는다.

문화인류학자 김찬호(55) 고전인문학자 전호근(54) 문학비평가 황현산(72) 신학자 박경미(58) 미학자 김융희(52) 시인이자 사회학자 심보선(45)씨 등 6명이 나섰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이 ‘권력을 더 이상 발휘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도 연장자로서 위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래 세대와 충실히 연결되는 통로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마련한 강좌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최소 세 번은 좌중을 웃겨야 한다”는 강의를 묶은 것이다 보니 유머가 곳곳에 매설돼 있지만, 터진 웃음의 뒤끝은 아프다.

김찬호씨는 몇 가지 ‘아재 개그’를 펼쳐 놓아 한바탕 웃기고는 젊은 세대에 재롱떠는 아재 개그식 생존법을 버리자고 주장한다. 대신 에릭슨의 발달심리학에서 중년 이후의 과제로 제시된 ‘생성’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이며 ‘선배 시민’이 되자고 제안한다. ‘선배’라는 사적인 호칭을 ‘시민’이라는 공적 용어와 합친 새로운 개념이다. “권위에 기대지 말고 아래 세대가 인생 항로를 헤쳐 나가는 데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아래 세대와 함께하는 인생 이모작’을 제안한다.

전호근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며 ‘성숙’을 기하는 것이 선배의 소임이라면서 인생이 목표를 재점검하고 수정할 것을 권한다. “책 읽는 노년을 무시하는 사회는 아직 오지 않았다”며 책 읽기와 자기만의 역사를 정리하는 글쓰기를 권한다.

황현산씨는 삶에 어떤 원형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융희씨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생각을 빌어 오십 이후의 인생은 새로운 차원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말한다. 박경미씨는 노년의 저항을, 심보선씨는 노년의 삶이 어떻게 사회 참여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이들이 제시한 답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에 기여하는 나이듦은 무엇일까’ 고민한 결과다. 새로운 발상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선배 수업’인가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