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시공간 종횡무진… 인간·우주 정보 다 담았다

입력 2017-01-19 18:56
정보이론을 개척한 미국 과학자 클로드 섀넌의 모습. 섀넌은 정보의 단위를 세는 ‘비트(bit)’의 개념을 창안한 학자로 그의 이름 앞에는 ‘디지털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동아시아 제공
영국 시인 토머스 엘리엇(1888∼1965)이 1943년 발표한 시에는 이런 구절이 담겨 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우리를 더 무지하게 만들고/ 우리의 모든 무지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어가지만/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네.’

엘리엇의 이 시구는 독자에게 묘한 울림을 선사한다. 현대인들은 정보와 지식이 봇물을 이루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자신의 무지(無知)를 자주 실감한다. 이 책 ‘인포메이션’에 등장하는 문구를 인용하자면 ‘정보는 지식이 아니며, 지식은 지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정보 피로’라는 개념이 등재됐는데, 그 뜻은 이렇다. ‘많은 정보에 노출됨으로써 나타나는 무감각이나 무관심, (중략) 과도한 양의 정보를 소화하려는 시도가 초래하는 스트레스.’

그렇다면 세상을 움직이면서 때로는 이처럼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는 정보의 실체는 무엇일까. 책은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히스토리’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정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담은 역작이다. 저자는 저작 ‘카오스’를 통해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 폭풍이 몰아친다는 ‘나비효과’의 개념을 알린 스타 저술가. 그는 시공간을 종횡무진하면서 지적 유희를 만끽할 수 있는 방대한 내용을 654페이지 분량의 책자에 빼곡하게 담아냈다.

원제의 부제는 한국어판과 다르다. 원서에는 ‘역사(History)’ ‘이론(Theory)’ ‘홍수(Flood)’라는 부제가 병기됐다. 이들 세 키워드로 정보의 총체를 아우르겠다는 것인데,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다뤄왔는지 살펴보는 내용이 전반부를 장식한다. 첫 챕터 제목은 ‘말하는 북’. 저자는 오래 전부터 북 연주로 소식을 주고받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시작으로 정보 교류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특히 미국 과학자 클로드 섀넌(1916∼2001)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룬다. 섀넌은 정보를 측정하는 단위 ‘비트(bit)’의 개념을 창안해 ‘디지털의 아버지’로 통하는 인물이다. 뉴턴이 ‘힘’ ‘질량’ ‘운동’ 같은 ‘낡고 모호한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물리학의 진전이 가능했듯 섀넌과 같은 정보과학의 대가들이 있었기에 정보의 역사가 분기점을 맞을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은 문자 사전 인쇄술의 발명이 정보전달의 속도를 끌어올리고 과학혁명을 견인한 과정을 전한다. 전신 전화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소통의 도구들이 만들어진 탄생 스토리도 확인할 수 있다.

중·후반부로 접어들면 언어학 물리학 수학을 아우르는 정보이론의 세계가 펼쳐진다. 수월하게 읽히는 대목이 아니어서 숙독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DNA는 물론이고 모든 생명체, 나아가 우주 전체는 정량화와 수량화가 가능한 ‘정보’라는 내용이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인터넷서점에 접속해 출판사가 제공한 ‘책 소개’ 코너를 읽다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이렇게 거대한 이야기를 이만큼의 넓이로 쓴 책은 없다,’ 단순한 선전 문구로 치부할 수 있지만 과장된 슬로건은 아닌 듯하다. 2011년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뉴욕타임스는 “정말 어마어마하고, 명쾌하며, 이론적으로 섹시하다”고 격찬했으며, 해외 유수 매체들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박래선·김태훈 옮김.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