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공여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18일 법원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취재진 포토라인을 네 차례나 거쳤다. 쏟아지는 질문에 침묵했고,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표정은 굳어졌다. 지난 12일 박영수 특별검사팀 출석 당시 “국민들께 송구스럽다”며 희미하게 웃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부회장의 운명을 결정할 영장심사는 약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 부회장은 이후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로 연행돼 구속 여부가 결정되길 늦은 밤까지 기다렸다.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 비로소 귀가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9시15분 검은색 체어맨 차량을 타고 서울 대치동 대치빌딩 특검팀 사무실 주차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박근혜 대통령 강요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느냐’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경영권 승계에 쓰였는데 도의적 책임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 등에 답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온 이 부회장에 대해 구인장을 집행했다. 그는 오전 9시33분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호송 차량인 검은색 카니발에 탑승했다. 수사관 2명과 함께 약 6㎞ 거리인 서울중앙지법으로 이동했다.
영장심사는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됐다. 법원 출입구에는 이른 아침부터 외신 등 취재진 200여명이 몰렸다. 이 부회장은 오전 9시56분 법원에 도착했다. 취재진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그를 막아서기도 했다. 삼성 미래전략실 임직원 9명이 이 부회장의 출석 장면을 지켜봤다.
영장심사는 서울중앙지법 319호 법정에서 오전 10시30분 시작해 오후 2시15분 끝났다. 법정을 나선 이 부회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다시 카니발 차량에 올랐다. 이 부회장은 영장심사 후 구치소가 아닌 특검팀 사무실에 머물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진을 다시 맞닥뜨리더라도 구치소에 가 있는 것만큼은 피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조 부장판사는 “특검 사무실을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는 피의자 유치 장소로 보기 어렵다”며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라고 결정했다.
이날 영장심사에서 특검팀과 이 부회장 측은 사활을 건 법리 대결을 펼쳤다. 특검팀에서는 양재식 특검보, 김창진 부부장검사, 김영철 박주성 검사가 참여했다. 이 부회장 측에서는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인 6명이 방어에 나섰다. 판사 출신인 송우철 변호사, ‘BBK 특검팀’ 특검보로 활동했던 문강배 변호사 등이 참여했다. 특검팀은 영장심사 후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법원은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특검→법원→구치소→귀가… ‘재계 1위’의 긴 하루
입력 2017-01-18 18:11 수정 2017-01-19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