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세계 최대 모바일 칩셋 제조사인 퀄컴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퀄컴이 독점적 지위를 내세워 스마트폰 제조사들에 비싼 라이선스를 구매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이어 미국에서조차 ‘갑질’에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퀄컴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됐다. 퀄컴은 대만과 유럽연합(EU)에서도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18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FTC는 퀄컴이 시장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부당한 부담을 줬다며 제소했다. FTC는 애플이 다른 칩셋 제조사와 협력하는 것을 퀄컴이 막았다고 주장했다. 퀄컴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에 사용되는 베이스밴드 프로세서(BP)를 독점 공급해 왔다. FTC는 퀄컴이 독점적 사업자라는 점을 이용해 로열티를 높게 받았다고 보고 있다.
FTC가 퀄컴에 소송을 걸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는 급락했다. 뉴욕 증시에서 퀄컴의 주가는 한때 5.6%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퀄컴의 시가총액은 하루 새에 43억 달러(약 5조원)가 날아갔다. 국내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을 때도 퀄컴의 시가총액은 22억 달러(약 2조7000억원)가 증발됐었다.
지난달 2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퀄컴이 국내 시장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1조3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국제특허법은 표준필수특허(SEP) 보유 업체가 공정하고 합리적, 비차별적으로 특허 사용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퀄컴이 이를 따르지 않고 특허 사용료를 과다 책정해 38조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퀄컴은 지난해 2월 중국에서도 특허권 남용을 이유로 9억7500만 달러(약 1조64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국내에서도 즉각 항소 뜻을 밝혔던 퀄컴은 FTC의 제소도 반박하고 나섰다. 퀄컴은 성명에서 FTC가 결함이 있는 법적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며 제소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퀄컴은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을 때에도 “공정위의 결정은 사실 관계와 법적 근거의 측면에서 모두 부당할 뿐만 아니라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고 반발했다.
퀄컴이 미국에서까지 제재를 받게 되면 수익 구조에 큰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퀄컴은 특허 사용료를 내세우며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칩셋을 독점적으로 공급해 왔다. 자사의 칩셋을 팔 때 특허 사용료를 묶어 팔면서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을 싼값에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칩셋 판매와 특허 사용료로 이중 수익을 내고 있었던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퀄컴이 미국에서 제소를 당한 건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고, 공정위의 과징금 제재에도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며 “법원 결정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전반적으로 퀄컴에 대한 전 세계적 여론이 나빠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스마트폰 특허 갑질’ 퀄컴, 미국서도 제소 당했다
입력 2017-01-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