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코트에 백팩을 멘 30대 후반의 남자가 서너살짜리 계집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온다. 계집아이는 남자의 보폭에 맞추기 위해 종종걸음을 친다. 두 사람은 어린이집이 있는 건물로 들어간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만난 풍경이다. 2001년 11월 유럽의 영유아 보육제도 취재를 위해 출장을 갔다. 프랑스 파리 최대의 사설 보육시설인 ‘라 메종 앙상테’를 둘러봤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빠 손을 잡고 들어섰다.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놀라움에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아이를 키우는 건 온전히 엄마 몫이었던 때였으니 그 모습이 이색적이었고 부러웠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모습은 일상이 됐다.
그때 썼던 기사의 제목이 “프랑스·영국의 보육제도 ‘육아=중요 전략사업’ 국가가 책임진다”였다. 당시로선 한 가정의 아이를 키우는 일에 국가가 나선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뉴스’였던 셈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정부도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주겠다’는 통 큰 선언을 했다. 2005년에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했고, 저출산·고령사회 중장기 계획(2006∼2020년)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까지 총 120조원이나 되는 예산을 썼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아니 절망적이다. 왜일까?
촛불로 광화문광장이 달구어졌던 지난해 말 그 이유를 짐작케 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행정자치부가 내놓은 ‘대한민국 출산 지도’다. 시·군·구별로 22∼44세 가임기 여성의 수를 표기하고, 지역별 순위까지 매겨놨다. “저출산 책임이 왜 여성에게만 있느냐” “여성이 아기 자판기냐” “아이 낳을 계획이 없는 나는 살처분이라도 당하게 되는 거냐” 등등 여성의 반응은 격했다. 정부가 애 낳고 기르는 일이 여성의 몫이라는 성 역할 고정화 이념에 갇힌 채 저출산 대책을 세우고 예산을 써왔으니 효과가 있을 리 만무다.
점점 더 가팔라지는 인구 절벽을 뚫을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고 보는 정부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여성들이 그 책무를 다할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적극적인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를 시행해보라고.
산전·후 휴가제, 육아휴직제, 유연탄력근무제, 시간선택제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들이 이미 시행되고 있기는 하다. 주로 여성들이 사용 중인 이 제도들은 여성을 남성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노동자로 자리매김하게 하고 있다. 임신하면 야근시킬 수 없고, 산전·후 휴가 가고, 육아휴직까지 하는 노동자가 달가울 경영주는 없다.
산전·후 휴가제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남성들이, 아니 남성만 쓸 수 있게 하자. 육아휴직을 아빠가 쓰지 않으면 없어지는 ‘파파스 쿼터’로 만들자. 그래서 엄마는 출산을, 아빠는 육아를 전담하게 하자. 정부가 출산 장려책의 한 축으로 삼고 있는 일과 가정 양립 정책, 그 대상을 남성으로 바꿔보자는 얘기다. 출산과 육아의 전담자로 인식되고, 그 역할을 해온 여성들을 육아에서 벗어나게 하는 적극적인 우대조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로 육아는 여성 몫이란 인식이 강했던 독일에서 2007년 남성을 육아에 적극 참여시키는 쪽으로 가족 정책이 바뀌면서 출산율 하강 곡선이 멈췄다.
‘벚꽃대선’이든 ‘철쭉대선’이든 이번 대통령을 뽑을 때는 출산율 제고 정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정치나 정권을 바꾸는 일보다 이 일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므로. 지금 제대로 하지 않으면 11년 뒤 어떤 적극적인 조치도 이미 의미가 없는 상태에 돌입해 있을지도 모른다. 성 평등한 시각에서 출산율 제고를 위한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는 후보에게 한 표 줄 작정이다.
김혜림 논설위원 겸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
[내일을 열며-김혜림] “여성이 아기 자판기인가요?”
입력 2017-01-18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