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패부터 확인”… 中, 도광양회 ‘만지작’

입력 2017-01-19 05:35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을 이끄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중국이 숨을 죽이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가 ‘고립주의’를 택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폐기를 외칠 때만 해도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새로 쓸 기회라고 생각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무역이나 환율에만 한정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퍼졌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트럼프가 기존의 관례를 깨고 지난해 12월 2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한 뒤부터다. 이후 트럼프는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이 레드라인으로 여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고 있다. 어느 때보다 미·중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중국은 중국을 향한 트럼프의 강한 발언들이 단순히 수사에 그칠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 정보 파악에 분주하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의 고위급 접촉은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방미해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를 만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트럼프와 면담하고, 우샤오후이 안방보험그룹 회장이 트럼프의 맏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내정된 재러드 쿠슈너를 만난 것이 고작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18일 “미국 관련 학자들이 계속해서 정부에 보고서를 올리고 있지만 학자들은 물론 정부 인사들이 트럼프 측과는 접촉도 못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에 외교 정책 조언을 하는 스인훙 인민대 교수도 “트럼프 당선 이후 중국 지도자들과의 깊이 있는 교류가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다양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가 취임한 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펼지 당분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도광양회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는 덩샤오핑의 핵심 외교 정책으로 미국과의 대립을 피하는 신중하고 방어적인 대외정책이다. 하지만 ‘중국의 꿈’을 외치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 이후 중국은 도광양회에서 벗어나 미국과 ‘신형 대국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며 힘의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푸단대 국제관계학원 니스슝 전 원장은 “그동안 중국은 세계 최강 미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면서 “중국 지도자들은 세계무대에서 중국의 힘을 확대하면서도 도광양회는 지킬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시 주석은 트럼프와의 통화와 축전에서 ‘신형 대국관계’의 핵심 내용인 ‘협력과 상호존중’을 강조했지만 직접 ‘신형 대국관계’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전임 대통령들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트럼프에 대해 그만큼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의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권의 ‘아시아 회귀’ 정책을 유지하지는 않겠지만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격전지로 동아시아 지역이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러시아가 가장 중요한 변수다. 옌쉐퉁 칭화대 교수는 “동남아에서 이점을 잃은 미국은 앞으로 동아시아에 집중할 것”이라며 “미국은 일본 한국 인도 싱가포르 베트남 등 중국 견제를 도울 나라 리스트에 러시아를 추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그동안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은 1989년 천안문 사태 후 서방의 제재 국면을 러시아의 도움으로 헤쳐 나왔다. 역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우군은 중국뿐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밀월 관계로 인해 미·러 연합의 중국 견제라는 새로운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