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올해부터 5년간 31억 달러(약 3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투자 규모는 지난 5년간 미국 투자액(21억 달러)보다 50%가량 늘어난 것이다. 국내에 이 정도로 투자한다고 했더라면 100만명을 넘어선 실업자들은 물론 경기 침체로 고통을 겪는 국민들에게 단비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투자한다고 하니 씁쓸하다.
현대차의 미국 투자 발표는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일자리 협박에 캐리어,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 GM 등 미국 기업은 물론 도요타, 현대차까지 백기를 들고 있다. “미국에서 장사하려면 미국에서 물건 만들고 미국 사람을 고용하라”는 트럼프의 압박에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미국 공장을 확충하거나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에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뛰는데 우리는 대기업들을 오히려 밖으로 내몰고 있다.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낮은 임금과 저렴한 물류비용 등을 좇아 갈 수밖에 없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싼 공장 부지에 파격적 세제 혜택을 준 앨라배마와 조지아주에 각각 공장을 갖고 있다. 이곳의 노동생산성은 1인당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는 국내 공장들보다 배가량 높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30년간 4차례를 빼곤 매년 파업에 나서 임금을 올리고 복지 혜택을 늘려 왔다.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귀족노조는 툭하면 파업한다고 하니 어떤 기업이 국내에 공장을 더 늘리고 싶겠는가.
정부와 정치권은 아직도 돈 내라고 팔을 비틀거나 기업들을 옭아맬 궁리만 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노동개혁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 등은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다. 경영 환경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인데 대권주자들은 노동자를 경영에 참여시키겠다는 등 서슬 퍼런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지경이니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리게 하려면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주고 다른 나라보다 나은 당근책을 내놔야 한다.
[사설] 우리 경제의 고질 확인시켜준 현대차의 미국 투자
입력 2017-01-18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