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처음 배운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첫 한문시간, 선생님은 한 글자가 A4 용지 크기가 될 만큼 큼직하게 칠판에 한자를 적었다. 공책에 쓰게 한 후 따라 읽힌 다음 무조건 외우게 했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으로 시작되는 주자(朱子)의 칠언절구 권학문(勸學文)을 소개한 것이었다. 뜻도 모르고, 그리다시피 공책에 옮기고는 혼나지 않기 위해 죽기 살기로 암기했다.
수십 년 전의 추억이 새삼 떠오른 것은 작년 말부터 제기된 초등 교과서 한자표기 논란 때문이었다. 교육부는 작년 12월 30일 2019년부터 초등학교 5, 6학년 모든 교과서에 한자 300자의 음과 뜻을 적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초등학생의 학습용어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유다. 예상대로 한글 관련 단체들이 벌 떼처럼 일어났다. 한글문화연대, 전국국어교사모임 등 54개 단체는 교육부 발표 당일 “한글을 사랑하는 국민과 함께 강력하게 반대 투쟁을 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올 들어 17일에는 교육부가 교과서에 싣겠다고 선정한 한자 후보 중에 현재 고교생이 배우거나 천자문에도 없는 한자까지 포함돼 있다고 항변했다. ‘젖을 습(濕)’ ‘얽을 구(構)’ ‘시험 험(驗)’ 등을 사례로 들었다.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은 초등학교에서의 한글전용 정책이 도입된 70년 3월 이후 지금까지 늘 부닥쳤다. 공청회가 열리면 격렬하게 맞섰고, 한글 전용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론조사는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가 좀 높지만 다수의 시·도 교육감은 교육부 입장에 반대한다.
한글과 한자는 각각 소리와 뜻이 담긴 보완적 문자다. 한쪽만 취하고 다른 측을 버릴 이유가 없다. 한자는 조어력과 간결성이 뛰어나 핵심어 파악에 도움이 된다. 선현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옛글을 읽는 데도 한자의 효용은 탁월하다. 부작용을 줄이고 혼용할 수있는 해법은 없을까.
글=정진영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한마당-정진영] 초등 교과서 한자표기 논란
입력 2017-01-18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