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강은희] 힘들수록 간절해지는 ‘가족’

입력 2017-01-18 17:37

뒤돌아봤을 때 인생의 최대 고비는 남편과 함께 경영하던 컴퓨터 관련 기업이 부도를 맞았을 때였다. 당시 둘째 아이를 낳고 갓 백일 지났었다. 살던 집이 채권자들에게 넘어갈 무렵 한 손으로 네 살배기 첫째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갓난쟁이를 업고 단칸방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다행히 대학에서 IT 관련 책임자로 곧바로 일할 수 있게 됐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최신 기술과 트렌드를 끊임없이 습득하고 경험을 쌓은 것이 재기에 성공하는 발판이 됐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텨나갈 때 웃음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요즘같이 대내외 경제여건이 녹록지 않고 생존경쟁이 치열한 시대에는 삶이 더 팍팍하고 고될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건강하고 단란한 가정이 몸과 마음의 안식처이면서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발전시키는 근간이 돼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의 바탕에도 가족 구성원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와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 가족을 ‘집 한 채’에 비유한다면 시기적절하게 잘 짓고, 살면서 튼튼하게 유지하고, 행여 무너지더라도 그 안의 사람들은 다치지 않게 보호돼야 한다. 가족정책 주무부처로서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가족의 첫 단추인 ‘형성단계’에서부터 과도한 혼례비용과 육아비용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작은 결혼’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올해 공공시설 예식장을 확대하고, 이 중 으뜸 명소도 늘리는 등 관련 인프라를 확충해 나갈 것이다. 또한 종교계, 사회시민단체, 유관기관 등과 협업을 강화해 젊은이뿐 아니라 부모세대의 인식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다. 소비적 육아문화도 바뀔 수 있도록 육아용품 대여와 중고물품 교환이 가능한 육아문화 나눔터도 운영하고 있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합리적 육아경험 공모전을 통해 우수 사례를 확산시킬 계획이다.

‘가족의 유지’를 위해 새롭게 중점을 두는 것은 가족의 의미,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권리 등을 일깨워주는 ‘부모교육’의 정착이다. 정부는 부처에 따라 산발적으로 진행돼 온 부모교육을 지난해 생애주기별·대상별로 체계화하고 국민 접점을 넓혔다. 이런 기반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인생의 주요 계기마다 필요한 부모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매뉴얼과 콘텐츠를 개발·보급하고, 관련 전문강사를 양성해 교육의 질을 높일 계획이다. 또한 전문 상담사가 위기를 겪는 취약가정을 직접 방문해 일대일 맞춤형으로 상담과 교육을 하고, 생활개선 지원을 실시하는 ‘가족행복드림 서비스’를 전국적으로 확대한다.

사별 또는 이혼 등으로 가족 해체를 겪은 가정을 위해서는 사회적 돌봄과 지원이 필요하다. 홀로 생계·육아의 이중고를 겪는 저소득 한부모를 위해 지원하는 아동양육비를 확대한다(만 12세 이하 연 120만원→만 13세 이하 연 144만원). 아울러 양육하지 않는 부모도 책임을 나눌 수 있도록 2015년 설립한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양육비 이행 실행력을 높일 계획이다.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A R Hochschild)는 돈과 시장이 대체하는 가족붕괴 현상을 패밀리(Family)와 출구(Exit)의 합성어 ‘패밀렉시트(Familexit)’라고 칭하고 우려를 표시했다. 가족이 개인에게 주는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은 대체재를 찾기 어렵다. 2017년 정유년 키워드를 한 가지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선거, 정치 등을 꼽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가장 중요하고 간절한 것은 결국 가족이 아닐까.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