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美에 3조6000억 투자”… 신규 공장도 검토

입력 2017-01-17 17:38 수정 2017-01-17 21:01
현대·기아자동차가 미국에 3조6000여억원을 투자하고 추가 공장 설립도 검토키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투자 압박에 ‘백기’를 든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독일 완성차 업체 BMW는 트럼프 당선인의 ‘35% 관세’ 협박에도 멕시코 공장 설립 계획을 고수했다.

정진행 현대자동차그룹 사장은 17일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진행한 외신기자 신년 간담회에서 “올해부터 2021년까지 5년간 미국에 31억 달러(약 3조64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사장은 “친환경차, 자율주행 등 미래 신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기존 생산시설에서의 신차종 생산 및 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 등을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신규 공장 설립에 대한 질문에는 “향후 미국 산업 수요 추이 등을 감안해 공장 건설 여부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현지 공장을 신설해 수요가 많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생산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현지 시장 수요와 대내외 환경 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생산 규모와 건설 지역, 설립 주체 등 자세한 사항은 추후 면밀한 검토를 통해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공장 신설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는 처음이다. 현대차는 미국 앨라배마에 연산 37만대 규모, 기아차는 조지아주에 34만대 규모의 공장을 가동 중이다.

현대차그룹의 분위기 변화는 임박한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경제 살리기’를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에서 영업 중인 국내외 기업에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정 사장은 “투자 활동에 대한 부분은 정상적인 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검토된 것”이라며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2공장 신설 방침을 정하더라도 실제로 이행하려면 노조 합의가 필요하다. 해외에 공장을 신설하면 현대차 울산 공장과 기아차 화성·광주 공장 등 국내 공장 물량이 줄어드는 만큼 노조가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BMW의 페터 슈바르젠바우어 미니·롤스로이스 담당이사는 16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의 한 콘퍼런스에서 기자들에게 “트럼프의 발언은 딱히 놀랍지 않다”며 “멕시코 공장 설립 계획을 트럼프 때문에 바꿀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 등은 전했다. BMW는 멕시코 산루이스포토시에 공장을 건설해 2019년부터 BMW 3시리즈를 생산할 계획이다.

국내외 기업에 미국 투자를 늘리라고 압박 중인 트럼프 당선인은 BMW가 뜻을 굽히지 않자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는 전날 영국 더타임스 등 유럽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BMW가 멕시코에 공장을 짓고 거기서 만든 차를 미국에 판다면 35%의 관세를 물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포드와 피아트크라이슬러, 일본 도요타 등은 앞서 미국 내 추가 투자 방침을 밝혔다. GM도 미국 공장에 10억 달러 투자 계획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BMW는 켄 스파크스 북미 지사 대변인을 통해 미 사우스캐롤라이나 스파턴버그에 자리한 자사 공장이 세계 최대 규모임을 강조하며 트럼프 달래기에 나섰다. 이 공장은 지난해 미국에서 일자리 8800개를 창출하고 자동차 41만1000대를 생산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BMW는 내년 대형 SUV인 X7 생산에 맞춰 10억 달러(1조1800억원)를 추가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파크스 대변인은 “BMW는 22년 전부터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해 왔다”며 “미국에 상당한 헌신을 했다”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