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블랙리스트 朴대통령 지시 여부 계속 확인”

입력 2017-01-17 17:41 수정 2017-01-17 21:12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일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기 위해 승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김 전 실장이 나타나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김기춘을 구속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가 리스트 작성·관리의 총책임자로 의심받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소환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며 정점을 향하고 있다. 박 특검은 취임 초 김 전 실장 수사를 “가장 어려운 난제”라고 밝히기도 했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존재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현 정부가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에 대한 지원 차단을 목적으로 한 명단을 작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특검팀은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과 문체부 관료 퇴진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리스트 존재를 파악해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특검팀의 블랙리스트 수사는 문화·예술계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문건 작성을 지시한 윗선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를 통해 특검팀은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토대로 특정 문화계 단체나 인물, 사업 등에 예산 지원을 끊거나 줄인 정황을 상당 부분 파악했다.

특검팀이 사전 접촉했던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14년 6월 블랙리스트를 처음 봤다고 밝혔다. 그는 리스트 작성과 관련한 업무를 김 전 실장이 주도했다고 털어놨다. 블랙리스트의 작동 구조는 ‘청와대 비서실 지시→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실 작성→교육문화수석실 전달→문체부 실행’의 절차를 거친 것으로 특검팀은 파악하고 있다.

특검팀 이규철 특검보(대변인)는 “고위 공무원들이 이런 명단을 작성하고 집행한 행위는 국민의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블랙리스트 작성에 깊숙이 개입한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이 지난 12일 줄줄이 구속됐다. 특검팀은 17일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조사를 진행한 뒤 조만간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정황은 아직까지 뚜렷하지 않다. 다만 박 대통령은 2014년 11월 손경식 CJ그룹 회장과 독대에서 ‘CJ 방송과 영화 사업에 좌편향이 심하다’는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박 대통령은 ‘창비’ ‘문학동네’ 등 출판사들을 좌파 출판사로 언급하며 예산 삭감을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을 개연성이 높은 셈이다. 이 특검보는 “리스트 작성에 박 대통령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황이나 물증이 있는지 계속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김 전 실장이 검찰 수사나 문체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함께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조사 이후 상황에 따라 블랙리스트 작성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추가로 수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글=노용택 정현수 기자 nyt@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