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민’ 민심 외면할 수 없어… “두 발 다 뺀다” 강공

입력 2017-01-18 00:05

영국이 유럽연합(EU)과의 완전한 결별을 택했다. ‘위대한 영국’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체리 피킹’(Cherry picking·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는 얌체 행위)은 용납하지 않겠다던 EU 측에 강공 카드로 일격을 날린 것이다.

일간 가디언과 BBC방송 등은 테레사 메이(사진) 총리가 17일(현지시간) 연설을 통해 ‘하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노선을 천명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이 밝힌 브렉시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EU와 완전히 새롭고 건설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메이는 이를 위한 4가지 원칙과 중점목표 12가지를 제시했다.

하드(경착륙) 브렉시트의 핵심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이탈을 통한 경제적 자립이다. 단일시장을 벗어나면 상품, 노동력, 재화의 EU 회원국 내 자유로운 이동이 중단된다. 또 관세 등 각종 비용이 증가하면 영국 기업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단일시장 울타리 밖에서 영국이 입을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산업연맹(CBI) 캐롤라인 페이비언 사무총장은 “무역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생길 것”이라며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당초 노르웨이 모델이 대안으로 언급됐던 이유다. 노르웨이는 관세동맹에 속하지 않지만 단일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갖는다. 대신 사람들의 자유로운 국경 이동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메이는 “다른 나라들이 시행 중인 모델을 채택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발을 반쯤 걸친 애매한 상태로 EU에 남지도 않겠다고 했다. 브렉시트로 기운 영국 민심의 뿌리에 ‘반(反)이민 정서’가 있기 때문에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탈퇴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풀이가 나온다. 12가지 중점목표에 국경과 이민 통제를 명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메이는 “영국은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서 유럽 국가들과 자유롭게 교역하면서 함께 더 안전해지고 번영하길 원한다”며 EU를 향한 문을 열어뒀다. 세계 주요국이나 블록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무역의 새 판을 짜겠다는 구상도 함께 밝혔다.

메이는 EU 탈퇴를 앞두고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그는 “영국인들은 보다 밝은 미래를 만들고자 변화에 투표했다”며 “종종 불확실해 보이더라도 이 길이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하드 브렉시트는 영국의 분열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총리는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채 EU 탈퇴가 이뤄지면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협상 일정도 변수다. 영국 고등법원은 브렉시트 협상을 공식 개시하는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최종 판결은 이달 말에 나온다. 정부가 패소해 협상 개시에 대한 의회 토론이 시작되면 계획한 일정대로 EU를 탈퇴하기 어려워진다. 오는 3월 31일까지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고 2019년 3월 31일까지 브렉시트를 위한 모든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영국 정부의 목표였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