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사회 대한민국] 강제로 무리하게 밀어붙여… 私益 우선 부끄러운 ‘민낯’

입력 2017-01-18 05:08
노점상인들이 17일 서울 동작구 지하철 4호선 이수역 7번 출구 앞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고 구청의 노점 강제 철거에 반대하는 노숙 농성을 112일째 벌이고 있다.
2009년 용산 참사 이후에도 강제 철거를 둘러싼 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은 줄었지만 도시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는 여전히 조합과 세입자 간 마찰이 잦다. 건물주와 임차인 간 갈등, 구청과 불법 노점상 간 충돌도 반복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이루어진 명도집행은 7만8078건이었다.

곳곳에서 철거와 저항

서울 곳곳 재건축·재개발 지역에서는 철거민들이 대책위를 꾸려 강제 철거 이후에도 버티고 있다. 노원구 월계동 인덕마을 상가 세입자들은 “조합 측에서 제시하는 보상금으로는 다른 곳에 터를 잡을 수 없다”며 지난해 9월 강제 철거 이후에도 이곳에 남아 있다. 지난해 5월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골목 주민들과 재개발 조합이 고용한 용역 간의 대치가 격화되자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나서서 강제 철거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강제 철거는 합법 절차지만 재산권 등 사익을 보호하기 위한 집행 과정에서 거주민의 주거권이나 세입자의 점유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강제 철거를 밀어붙이면 그 자체가 인권보다 사익 보호를 우선시하는 행정집행이 될 수 있다.

유엔사회권위원회는 1995년, 2001년, 2009년 세 차례 심사에서 모두 한국의 강제 철거 실태가 우려스럽다며 예방 조치를 권고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7월 ‘제2기(2012∼2016) 국가 인권정책 기본계획 평가’에서 강제 철거 과정에서 거주민의 인권 보호를 위한 각종 법·제도를 정비하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지자체 보완 대책 살펴보니

서울시는 지난해 9월 강제 철거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정비사업 기획 단계부터 세입자와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사전협의체 등 분쟁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시는 지난 5일 사전협의체 조례 개정안을 공포해 법제화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사전협의체 제도는 용산 참사 이후 2013년에 도입했지만 그간 행정지침에 머물러 실효성이 떨어졌다. 개정안은 사전협의체를 운영하지 않는 조합은 시정명령이나 벌칙 등 법적 제재를 받도록 했다. 또 그간 사전협의체를 구성해온 주체는 조합이었지만 이제는 구청장이 구성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강제 철거를 진행하게 될 경우 공무원을 입회시켜 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 행위도 감시할 예정이다.

사각지대 놓인 행정대집행

서울시가 내놓은 보완 대책에도 사각지대는 남아 있다. 이번 보완 대책은 재건축·재개발 사업 등에서 민간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이뤄지는 강제 철거인 명도집행에 국한돼 있다. 시·군·구청이 강제 철거에 나서는 행정대집행을 견제할 장치는 없다.

지난달 28일 부산 동구청은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을 강제 철거하려다 반발에 부닥쳤다. 구청 측은 “도로법 위반 사항이므로 법대로 철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부정적인 목소리가 거세지자 결국 소녀상을 돌려줬다.

이처럼 시·군·구청이 집행 주체인 행정대집행은 중재자의 역할을 기대할 곳이 없다. 그나마 사전 절차라는 게 ‘자진 철거하지 않을 경우 강제 집행한다’는 내용의 계고장을 보내는 것이 전부다.

가장 흔한 행정대집행 사례가 구청과 불법 노점상 간 갈등이다. 아현동 포차거리, 이수역 포장마차, 노량진 컵밥거리 등이 그 예다. 최근 5년간 송파구 마포구 동작구 노원구 일대에서 진행된 행정대집행은 총 12건이다. 이 중 대다수가 불법 노점 철거였다. 노점 상인들은 보상이나 대책 없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다고 주장하고, 구청은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행정대집행에는 사전 협의나 조정과 관련된 절차가 없다”며 “서울시가 발표한 보완 대책은 민간이 하는 재개발 사업에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만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행정대집행에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이가현 임주언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