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7일 “노무현 대통령께서 ‘정치교체’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도 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있는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노 대통령 말씀과 리더십은 아직도 국민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신이 귀국 일성으로 내세웠던 ‘정치교체론’을 부각시키려는 포석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2년 대선후보 시절 정치교체를 언급했다’며 자신을 공격한 야권을 겨냥한 말이기도 하다.
전날부터 3박4일간의 영호남, 충청 지역 방문을 진행 중인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봉하마을을 찾았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이 취임식 때 변혁과 통합, 개혁과 통합을 외치시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며 “이제 국민은 노 대통령 말씀처럼 공정하고 반칙 없는 사회, 사람 사는 세상을 갈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묘소 참배 후 30여분간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그는 “노 대통령께서 저를 유엔 사무총장으로 진출시키기 위해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말씀도 해주시고 많은 노력을 해주셨다”고 사의를 표했다. 권 여사는 “반 총장님은 우리나라에 귀중한 분이니 건강 유의하시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권 여사는 반 전 총장 비판 시위를 의식한 듯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저희도 걱정”이라고 했다. 반 전 총장은 “민주사회에서 이런 정도야 늘 있을 수 있지 않으냐”고 답했다.
앞서 반 전 총장은 시위 인파와 경찰, 취재진이 몰려 노 전 대통령 묘소까지 이동하는 데 애를 먹었다. ‘노사모’ 등 친노(친노무현) 단체 회원들은 “대통령 나올 염치가 있느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으냐”고 외치며 야유했다. 곳곳에선 ‘배은망덕 기름장어, 봉하마을 지금 웬일?’ ‘대권 도전 어림없다’ 등의 손팻말과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반 전 총장은 오후엔 전남 진도 팽목항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참배했다. 그는 시위 중이던 ‘박근혜정권 퇴진 진도운동본부’ 단체 회원 등 20여명을 피해 분향소로 들어갔다. 실종자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선 “정부가 세월호 침몰 때 좀 더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했더라면 많은 생명을 구했을 텐데…”라며 위로했다. 그는 정부의 세월호 선체 인양 방침에 대해 “믿으셔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못 믿는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시위대는 “정치 쇼”라고 주장했다.
반 전 총장은 전남 영암읍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18일엔 광주 5·18민주묘지 참배, 조선대 특강 일정을 이어간다. ‘보수 후보’ 이미지를 벗으려는 행보다.
정치권에선 반 전 총장이 국민의당 등과 손잡는 이른바 ‘뉴DJP연합’을 도모하거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배제한 ‘반문(반문재인) 연대’를 결성한다는 시나리오도 나돌았다. 반 전 총장 측은 “기존 정당과 연대할 수는 있지만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해·진도=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봉하마을 간 반기문 “盧 전 대통령도 정치교체 언급”
입력 2017-01-17 17:56 수정 2017-01-17 2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