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3시쯤(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도 롤리의 주지사 집무실. 로이 쿠퍼(60) 신임 주지사는 성기학(70) 영원무역 회장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쿠퍼 주지사는 “취임한 지 열하루 지났는데 이 방에서 외국인을 만난 건 성 회장이 처음”이라며 “세계 섬유업계를 선도하는 한국 기업들이 노스캐롤라이나 지역 투자에 관심을 가져 줘 대단히 고맙다”고 악수를 청했다. 성 회장은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검찰총장을 지낸 민주당 소속 쿠퍼 주지사는 지난해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의 팻 매크로리 당시 주지사를 꺾고 당선돼 지난 2일 취임했다.
쿠퍼 주지사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법인세를 더 낮추고 세계 최저 수준의 전기료를 유지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이곳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성 회장은 “한국 섬유업계와 노스캐롤라이나 주정부, 나아가 한국과 미국이 경제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면담 뒤 국민일보 기자를 만나 “한 번에 (투자를) 결정할 수는 없다”면서 “오는 3월 한국 섬유업계 차원의 미국 투자단을 결성해 노스캐롤라이나를 다시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 섬유업계가 노스캐롤라이나를 주목하는 것은 미국 내에서도 경제성장 속도가 빠른 이 지역이 섬유산업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섬유공장 700여개가 몰려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는 미 섬유산업에서 ‘밸류체인’(Value Chain·가치 사슬)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몰려드는 해외 섬유산업 투자의 40%, 일자리 창출의 26%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곳은 섬유산업의 기술발전을 이끌어가는 과학자를 압도적으로 많이 배출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섬유대학이 있다는 게 또 다른 강점이다. 1887년 설립된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는 미 섬유공학 박사학위 소지자의 90%를 배출할 만큼 섬유산업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정부가 기업 유치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빼놓을 수가 없다. 노스캐롤라이나는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주’ 2위에 오를 만큼 기업 친화적이다. 미국 최저 수준인 법인세는 올해부터 4%에서 3%로 더 낮아졌다. 전기료는 ㎾당 5∼6센트로 한국이나 중국의 절반 수준이다. 노동조합 결성률도 3%에 불과하다.
주정부는 특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기업에 대해 일자리 1개당 최고 3000달러(352만원)까지 지원한다. 2014년 노스캐롤라이나에 800만 달러(94억원)를 투자한 칠성섬유는 60명을 고용하는 조건으로 8만 달러를 주정부로부터 받았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진출한 한국 섬유기업은 효성, 고려텍스타일 등 3개 업체다.
노스캐롤라이나를 주목하는 건 한국뿐만이 아니다. 대만의 최대 섬유기업 에버레스트는 지난달 노스캐롤라이나에 향후 5년간 1억8500만 달러(217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섬유공학회장을 지낸 강태진 서울대 교수는 “자동화 수준이 높은 섬유산업은 인건비 비중이 낮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으로 예상되는 한·미 간 통상마찰을 줄이고, 미 시장을 적극 공략하기 위한 방편으로 현지 투자 확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롤리(노스캐롤라이나)=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전석운 특파원의 현장르포] ‘한국 기업이여 오라!’ 미국 섬유산업 중심지의 구애
입력 2017-01-18 05:09